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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Nov 21. 2022

먼 길_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 박수자

자칭 삐급 작가의 에이급 에세이


나를 작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작아진다. 글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삶이 나를 작아지게 한다. 이 사람의 글도 그렇다.

 

자칭 '삐끕' 작가 박수자의 글을 읽는다. 글에서 사람을 읽는다. 어릴 때는 쓸모없는 가시나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갖고 싶은 기회들이 남성인 오빠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을 보면서 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남녀차별을 겪었다. 결혼 후에는 가부장제라는 가시 울타리에 찔리며 살았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학벌이라는 차별도 받았다.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에 갇혀 살기 쉽다. 알게 모르게 익숙해지고 체념하고 산다. 마치 소금에 오래 절여진 오이지처럼 쪼글쪼글해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박수자는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돌이 나타나면 그 돌을 번쩍 눕혀 디딤돌로 밟고 건넌다. 스스로 만든 그녀의 디딤돌을 읽자니 물컹하게 살아온 내 시간의 축축함이 빠지면서 단단해진다.

 

오랫동안 받은 편견에 갇혀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그것들을 차곡차곡 잘 썩혀 두엄을 만든다. 이 두엄으로 자기 안에 자신이 만들어 심은 씨앗을 키운다. 오랫동안 속으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고 뿌리를 단단히 하여 드디어 세상 밖으로 꽃을 피워냈다. 그녀가 피워 올린 당당한 꽃대를 읽자니 한숨 쉬며 흐느적 살아온 내 시간이 꼿꼿해진다.

 

그렇다고 그의 책이 인생 성공기는 아니다. 그는 살기 위해 썼다고 한다.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지켜내려고 썼고 쓰는 자신의 작업은 실존을 지켜주는 유일한 자존의 비상구라고 말한다.

 

그는 당당하다. 그래서 강해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칼이나 가시를 사용하지 않는다. 늙은 지게꾼과 밥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내 밥을 먹을 때 남의 밥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밥을 먹을 때 밥그릇 뚜껑에 두 손을 모아 밥에 대한 경건한 의식을 행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밥 앞에 너그러워지고 힘을 얻게 해주는 밥의 힘을 아는 사람이다.

 

맵고 독한 삶을 다독여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길목에 귀하게 피워낸 꽃을 보란 듯이 자랑하지 않고, 위로와 위안의 선물로 건넨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있다. 글도 그렇다. 그녀의 산문집 ’ 먼길_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의 차분한 분홍색 표지가 따뜻하다.

 

박수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작아진다. 내가 부끄러워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씨앗처럼 단단해지느라고 작아진다. 나도 씨앗을 만들어 품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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