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수원에 있는 경기도 간호사회에 다녀왔다. 재취업 사례 발표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단하게 원고를 작성해서 갔다. 매년 한 번 정도는 하게 되는데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에 나오는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임종에 가까운 환자 간호에 대한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 질문이 나왔다. 어떤 처치와 간호가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보는 마음이 어떤가에 대한 질문이다. 간호사도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긴장되고 두렵기 때문이다.
의식이 차츰 가라앉고 숨결이 조금씩 낮아지다가 결국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임종의 순간이 온다. 기계의 모니터 화면에 심장의 파동 대신 직선이 나타난다. 하지만 임종 후 간호를 하기 위해 환자의 가슴을 만지다 보면 미세하게 다시 심박동이 살아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다시 호흡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하는 순간에도 한 사람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다 사라지는 않는다. 죽는 순간부터 존재가 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분이 살아계셨던 때처럼 대하려고 애쓴다. 얼굴과 몸을 단정하게 해 드리고 매무새를 살펴 드린다. 그간의 질병으로 마지막이 힘드셨던 분에게는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도 해드린다.
내가 한 대답은 ‘오늘, 지금’이었다. 비록 환자가 내일 혹은 그 다음날 운명하실지라도 오늘 지금 나와 마주한 순간은 살아있는 ‘생’의 시간이므로 살아있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보살펴드리려고 애쓴다고 이야기했다. 생의 마지막에서 마지막이 아닌 ‘생’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답을 했다.
이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사진은 작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