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부터 비가 내렸다. 저녁에 이어 밤까지 내렸다. 빗줄기는 굵고 거셌다. 바람은 거칠고 제멋대로였다.
바람이 낙엽 목덜미를 친다. 공중제비를 시킨다. 기다렸다는 듯이 빗줄기가 마른 등짝을 휘갈긴다. 온몸이 젖는다. 고꾸라진다. 떨어진다. 지켜보는 가로등 눈자위가 허옇게 질린다. 속수무책이다.
앞 유리창에서 굵은 빗방울들이 터진다. 와이퍼가 밀어낸다. 붉은 단풍잎 몇 개가 엉겨 붙는다. 와이퍼가 빠르게 밀어낸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이 달라붙는다. 시야를 가린다. 와이퍼가 순식간에 밀어낸다.
생각이 깊어진다. 깊어지는 생각에 빠지면 위험하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빠져나오기 위해 달린다. 생각이 엉겨 붙고 달라붙는다. 이 또한 위험하다. 깊어지는 생각을 밀어내면서 달린다.
비바람을 뚫고 도착한 밤 아홉 시 병원의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흥이 많고 노래를 잘하시던 분이 방금 마지막 숨을 거두신 후였다.
기분이 좋으면 병동 로비에서 다른 할머니들을 앉혀두고 공연도 하셨다. 꼭두새벽에 보따리를 싸서 병실 밖으로 나오셔서 해맑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나들이를 가는 길이라고도 한 적도 있었다. 꼭 초등학생 소풍 가는 표정이었다.
새벽마다 혈당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하시던 분이다. 그럴 때면 살살 달래서 노래를 시켰다. ‘비 내리는 호남선’이 기적 소리를 울릴 때 얼른 손가락을 붙잡아 혈당 검사를 했다. 아련한 표정으로 ‘섬마을 선생님’이 오실 때 얼른 웃옷을 걷어 뱃살에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렸다. ‘동백 아가씨’가 등장할 때쯤이면 할머니는 손가락을 침에 찔린 것도 배에 주삿바늘이 들어왔다 나간 것도 모르고 노래에 흠뻑 빠져 있었다.
요즘 며칠 동안 할머니의 기저귀가 붉게 젖었었다. 급성기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볼 것을 권했다. 보호자는 거절했다. 여든과 아흔 사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흔히 겪는 일이다. 기저귀가 붉어질수록 할머니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입술마저 하얗게 변했다.
이틀 전 밤 할머니는 불러도 대답을 못 하셨다. 가슴을 꼬집자 겨우 눈을 가늘게 떴다 감으셨다. 새벽에 잠시 기운을 차리시길래 이름을 불러드렸더니 웃으신다. 동무들하고 소풍 간다고 짐 싸서 나왔을 때의 그 표정이 언뜻 스쳤었다.
붉고 낭자한 것을 사흘 동안 떨구시고는 가셨다.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다. 비바람을 뚫고 보호자가 와서 모셔갔다. 어쩌면 할머니는 지금 친구들 만나 꽃놀이를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새벽이 되자 비가 그쳤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그 틈을 타 또 한 분이 마지막 숨을 놓으셨다. 내가 이 병원에 처음 근무할 때부터 계셨던 분이니 오래 계신 분이다. 오 년을 넘게 계셨다. 작년 가을부터 몇 번 고비가 있었다. 가족들은 여러 번 급하게 임종 면회를 하러 병원을 왔다 갔다 했었다. 일 년 훨씬 넘는다.
가족에게 연락을 드렸다. 전화기 속 목소리가 담담하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담담하다. 오랜 병원 생활에 많이 마르신 할머니는 가벼웠다. 보호자는 가볍게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두 분이 가족에게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분들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은 대부분 이렇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처음 근무할 때처럼 먹먹하지도 않지만, 그저 담담하지도 않다.
과정은 익숙해졌지만 익숙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문득 허탈해진다. 후배에게 이런 내 기분을 토로했다. 후배는 그런 일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라 답한다. 그 말에 위로를 받는다. 묶인 것이 풀리는 느낌이다.
퇴근 후 저녁에 아들과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지난밤의 비바람으로 거리가 온통 낙엽이다. 땅 위에 겹겹이 쌓여있다. 나무들은 여름을 내려놓고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말없이 묵묵히 하고 있다. 그 묵묵함을 보면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