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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an 05. 2023

슬프고 반가운 풍경


70을 오르내리던 산소포화도가 더 낮아졌다. 숨결은 임종 직전의 특징을 보인다. 혈압이 잡히지 않는다. 맥박수가 줄어들고 있다.

가족에게 연락한다. 낮에 임종 면회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벌써 눈자위가 벌겋다. 일회용 비닐 가운을 입고 비닐장갑을 끼는 손이 떨린다. 이십 대의 젊은이는 어른들 틈에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허둥거린다.

모니터에 떠 있던 아주 완만하게 흐르던 곡선이 사라진다. 가느다란 초록의 직선이 나타난다. 아버지, 불러도 이미 대답은 없다. 중년의 아들은 파리해진 아버지의 손을 꽉 잡는다. 무릎을 꿇고 흐느낀다.

나는 눈물 젖은 얼굴로 훌쩍이며 일어나는 보호자에게 담담하게 절차를 설명한다. 그는 서류를 들고 다른 가족들과 장례에 대해 상의하러 병동 밖으로 나간다.

이 풍경이 슬프지만 반갑다.

코로나가 극심하던 때는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가엾은 노인 환자들은 추석에도 설에도 가족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와도 면회는 가능하지 않았다. 외부인이 병실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기의 역병, 코로나는 산 사람들의 만남도 방해했지만 산 자와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만남까지도 막았다.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 한 번 쓰다듬어보지 못하고 영영 이별을 맞았다. 흰 포에 싸여 병동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아닌 내가 억울하고 답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코로나가 아주 극심하던 때는 장례식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가족들이 병동 밖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모실 장소를 구하느라 애를 먹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몇 년 전 아버지와 두 딸의 이별이 떠오른다. 삼십 대인 두 딸은 늦은 밤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해서 몇 시간 동안 아버지 곁을 지켰다. 자는 듯 눈을 감고 숨결이 낮아지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면서 귀에 대고 끊임없이 아빠를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이제 편히 쉬시라고 속삭였다.


마지막 이별에 있어야 할 가족 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던 시절이었다. 무섭게 몰아닥친 병균의 높은 벽은 사람들이 꼭 가져야 할 이런 인사의 시간조차 막아버렸다. 그게 일 년이 넘는다.


이제 다시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예전처럼 몇 시간 동안 곁에서 임종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은 여전히 아니다. 하지만 잠시나마 서로 만나 편히 잘 가시라 손을 잡아드릴 수 있게 되었다. 슬픈 풍경이 다시 왔지만, 다시 온 이 풍경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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