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Jan 21. 2023

별은 사라지고 그 빛만 남아

별은 사라지고 빛만 남아     

내가 살던 곳은 서울 변두리였다. 원주민들이 살던 오래된 마을이 있었고 그곳을 조금 벗어나면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해 새로 지은 이 층 집들이 여러 채 모여 있었다. 두 지역은 꽤 커다란 공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동네에는 초등학생을 모아 놓고 전문적으로 과외를 하는 집이 있었는데 지금의 보습학원과 같다고나 할까. 간판은 없었지만, 그곳에 공부하러 다니는 아이들이 꽤 많았고 거길 다니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다.      


나도 ‘과외’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지만, 우리 집은 돈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어서 부모님께 과외를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우연히 나랑 친한 친구가 그곳으로 과외를 다닌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는데 뜻밖에도 나도 거기 가서 공부하라며 돈을 내주셨다. 아마 그때가 육 학년 이 학기여서 곧 시작될 중학교 공부를 예습하라고 보내신 것 같다.     


대학생인 젊은 남자 선생님이 중학교 일 학년 영어와 수학 과정을 가르쳤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편이었는데 같은 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가끔 그 여자 친구도 우리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어느 날 나와 친한 아이가 문제집을 놓고 집에 그냥 가버렸다. 선생님은 그 친구 집을 아는 내게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가방에 넣고 나서는데 남자아이 하나가 따라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저녁 시간이라서 여자아이 혼자 보내는 것이 걱정스러워 같이 가라고 보내신 것 같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학생이랑 같이 가는 것이 불편한 나는 공터 건너편 이층 집들이 있는 곳에 있던 친구 집을 향해 달리듯 재게 걸음을 놀렸다. 남자아이는 내 친구의 집을 모르니 내가 가는 대로 뒤에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달리면 같이 달리고 멈추면 그 아이도 멈춰 서서 내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친구에게 책을 돌려주고 돌아오는 길은 완전히 깜깜했다. 무서운 생각도 들고 같이 온 놈이 성가신 생각이 들어서 나는 힘껏 공터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깜깜한 밤하늘에 엄청나게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리를 지어 흐르듯 빛나는 별들과 덩어리 져 쏟아질 듯 빛나는 별들 사이, 보였다 사라졌다 까무락거리는 별들, 별들, 별들에 넋이 나가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은하수야.”      


뒤에 따라오던 녀석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물어봤어?”     


머쓱해진 나는 톡 쏘아붙이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뛰지는 않았다. 내가 뛰질 않자 녀석은 냉큼 내 옆으로 와서 같이 걸었다. 나는 계속 하늘의 별을 보며 걸었다.      


“저기 흐린 구름처럼 보이는 것도 별들의 무리야. 저건 오리온자리고.”      


그 아이는 내가 묻지도 않은 별자리와 성운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자 선생님하고 여자 선생님은 결혼하고 싶어 하는데 여자 선생님네 집에서 반대한대. 엄청난 부잣집이라고 하더라.”     


은하수와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갑자기 선생님의 연애사로 넘어갔다. 1979년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1980년 과외 금지령이 내려지고 나는 과외방을 가지 않았다. 같이 과외를 했던 아이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못 했다고 한다. 여자 선생님의 어머님이 병환으로 돌아가시면서 그 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밤하늘에 별이 많은 겨울밤이면 열세 살 겨울밤의 은하수가 떠오른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내 녀석의 이야기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젊은 청춘 남녀도 떠오른다.      


오늘 밤하늘은 유난히 깊고 맑은 짙푸른 색이 겹겹이 들어차 있다. 별도 많다. 예전처럼 흐를 듯 쏟아질 듯 많지는 않지만 아주 멀리서 오는 별도 보인다. 어쩌면 별은 사라지고 빛만 남아 지금 내 동공 속으로 건너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올려다보자니 코끝이 차갑고 시큰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크기도 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