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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23. 2023

꺾이지 않는 마음, 그래도 꺾였을 때


최근에 유행했던 말 중에 ‘중꺾마’라는 줄임말이 있다. 풀어 말하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작년 늦가을에 있었던 카타르 월드컵 이후 많이 알려지고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은 16강에 진출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포루투칼과의 경기에서 어렵게 승리하면서 진출에 성공한다. 이 당시 선수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에 쓰여있던 문구가 바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우리 팀은 다음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패해 8강에는 나가지 못한다. 이때부터 ‘중꺾마’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 선수들을 응원하는 뜻으로 졌다고 좌절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겼을 때보다 지고 나서 더 유명해진 말이다.      


처음 유래는 월드컵 경기가 아니라고 한다. 롤 게임을 다룬 어떤 기사의 제목에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이후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그 후 이 말은 포기하지 말라는 말 대신 많이 쓰인다.      


어떤 사람들은 꺾이면 어떠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발의 속뜻은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다. 그만하라는 말이 아니라 천천히 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작년에 시작했던 공부를 올해도 이어서 하고 있다. 삼월부터 매주 두 번씩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최근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이직하게 된 후 두 가지의 일이 겹치면서 몸이 힘들고 마음이 피곤하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눈 감고도 하던 익숙한 일이 달라졌다. 새로운 일의 과정에 맞춰 몸을 많이 움직이다 보니 발목이 시큰거리고 무릎도 부었다. 새로 만난 동료들과도 아직 잘 알지 못하니 관계의 긴장이 크다. 혹시 실수할까 봐 애쓰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맥이 쑥 풀려버린다.     


물을 잃은 낙지처럼 늘어진다. 자꾸 눕고 싶다. 입맛도 없다. 그렇다고 안 먹으면 몸이 더 쳐진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아는지라 뭐라고 먹어야겠는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쏟을 힘이 안 생긴다. 더운밥에 찌개 한 가지라도 차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힘들다는 투정을 받아주면 좋겠다. 

     

오늘처럼 아침에 퇴근하고 몇 시간 쉬지 못하고 바로 서울로 가야 하는 날에는 내가 왜 이리 생각 없이 일을 벌여서 나 자신을 힘들게 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무모한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어차피 길게 가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니 다음 학기로 연기할까 싶은 마음도 슬그머니 생긴다.    

  

그런데 살아온 시간이 자꾸 말을 건넨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다시 이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금은 두 갈래의 물길이 합쳐서 물살이 빨라져 힘들지만 이미 물은 흐르고 있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급류에 휩쓸려 사라져버릴 수 있다고.    


너 스스로가 계속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도 건넨다. 지금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도 중요하니 그 마음을 버렸을 때 더 힘들 수도 있음을 잊지 말라고도 한다. 한 번에 승패가 결정되는 경기가 아니니 조금씩이라도 계속하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다 보니 마음이 꺾인다. 꺾였다고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해주고 있다. 목표를 잊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감을 잊지 않으려는 다독임이다.      


꽃눈이 달린 가지는 나무에서 꺾여도 꽃을 피운다. 병에 꽂아 물을 대주면 뿌리가 없어도 환하게 꽃을 내민다. 나무에 있던 때 만들어진 물길을 통해 물을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꺾인 가지라고 버리면 구석에서 시들고 사라지게 된다.  

    

꺾인 마음도 마찬가지다. 잘린 가지에게 물을 먹여주고 품어주는 화병처럼, 꺾어져 아픈 마음을 받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꺾여도 괜찮다는 격려의 말과 함께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결국 품은 꽃은 시들지 않고 피어날 것이다.      


그 사람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나를 응원하는 당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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