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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12. 2023

문래동에서 라떼와 MZ가 만나다

“걔는 엄마의 약점이에요.” 

남동생이 엄마에게 너무 막 대한다고, 그런데 엄마는 그걸 다 받아준다고, 서른이 넘었으니 이제는 그럴 나이는 지났다고 조카딸이 푸념한다.


“자식은 항상 부모의 약점이야.”

조카딸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느새 나는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나의 사십 대를 노심초사하며 보냈다고. 혹시라도 네 사촌 동생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 할까 봐 애를 태웠었다고.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정말 아슬아슬한 시절을 건너왔다고. 


“그런데 자식은 그걸 잘 모르지.” 

나는 이제는 딸아이도 힘들던 그때의 엄마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내 맘을 조카에게 털어놓았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고기가 갑자기 뿌옇게 흐려진다. 조카가 내게 냅킨 한 장을 건네준다. 


“이모, 자식은 자식 입장이 있잖아요.”

그렇긴 하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자식으로만 살 때는 내 엄마에게 그랬지. 엄마가 된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후끈해지지. 하지만 아직도 미안하다는 말 안 하지.


“그래도 너무 몰라준다 싶을 때가 있어.”

그럴 때는 쓸쓸하다고, 외롭다고, 결국 서러워진다고 투덜거리면서 하이볼을 들이켠다. 목구멍이 시원해지고 속이 후련하다가 탄산수가 섞인 독주가 뱃속으로 짜르르 퍼지면서 속이 다시 홧홧해진다. 


“몰라준다는 그 맘은 자식도 가지고 있어요.”

동생 때문에 엄마가 애면글면하는 걸 알지만 이제는 그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조카의 목소리가 떨린다. 동생이 그럴 때 자기도 고등학생이었고 질풍노도의 시기였다는 말을 하면서 눈이 붉어진다. 나는 냅킨을 건네주는 대신에 어깨를 두드려준다. 몇 점 남지 않은 고기를 조카 앞으로 밀어준다. 우리 둘은 나란히 하이볼을 한 모금씩 더 들이킨다. 





“난 딸이 어려워서 힘든 이야기를 못 하겠어.”

“이모, 걔도 엄마한테 힘든 거 다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걔가 자기 대학 입학하고 너무 힘들었는데 엄마가 그거 몰라준다고 원망하더라.”

“자식이니까 당연히 엄마가 알아주길 바라죠. 나도 그래요.”


“그때 내가 얼마나 살기 바빴는데? 정말 정신없이 살았어. 그래서 몰랐던 거지. 일부러 모른 척한 건 아니거든. 그런데 걔가 원망하니까 그 시절의 내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어.”

“이모, 걔는 그때 이모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때 자기도 힘들었다는 걸 지금이라도 알아달라는 것뿐이에요.”



나는 내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을 조카딸에게 하고, 조카딸은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모인 내게 했다. 

대로변에는 요즘 세대의 입맛에 맞게 꾸며진 식당의 간판들이 즐비하고, 뒷골목에는 아직도 작은 공장의 오래된 간판들이 수두룩한 문래동 어느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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