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보다가 갑자기 울컥하는 일이 잦다. 어떤 한 단어에 눈앞이 뿌옇게 된다. 한 문장에 주룩 눈물이 흐른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읽어 넘겼던 낱말이나 글 앞에서 그런다. 예를 들자면 ‘달팽이’라는 단어라던가 ‘그때 이사를 했다.’라는 문장에 걸려 젖는다.
애인이 섭섭한 말을 해도 금방 눈가가 붉어진다. 속상할 일도 아닌데 속상해서 목소리가 떨리기도 한다. 애인은 모른다. 나를 보고 있지 않으니까.
이러다가 떨어지는 꽃잎에도 울 기세다. 사춘기 때도 안 그랬었는데. 불과 한 달 전에는 ‘천하무적 최 선생’이라는 격려(?)까지 듣던 나였는데.
그런데 눈물이 쏙 들어가는 때가 있다. 오늘 새벽이 그랬다.
“언니 손이 왜 이렇게 하얀 거죠? 좀 전만 해도 안 그랬잖아요? 그땐 보라색이었어요.”
여동생의 얼굴은 눈물범벅이다. 언니의 손을 잡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는 한 손은 자매의 손에 포개고 또 한 손은 동생의 팔을 잡는다. 언니의 손은 이미 식었고 동생의 손은 따뜻한데 떨리고 있다.
나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한다. 심장이 아주 천천히 뛰게 되면 손가락까지 산소공급이 어려워져서 손가락과 발가락의 색이 짙어지다가 심장이 멈추고 피돌기도 멈추면 핏기가 사라져서 하얗게 변하는 거라고.
마냥 손을 잡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 간호사실로 와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일을 한다. 빠뜨린 일은 없는지 확인해본다. 멀지 않은 병실에서는 계속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어제 낮에 입원한 사람이었다. 이미 항암치료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까지 듣고 상급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에 있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집에 있을 때 언니가 통증으로 너무 힘들어해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곳은 이 자매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언니가 덜 아프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의 시작. 그리고 동생은 언니를 지키며 언니는 동생의 돌봄을 받으며 서로 섞일 수 있는 시간의 시작. 그래서 자정 무렵 병실에서 만난 동생의 얼굴은 밝았다. ‘시작’은 누구든 걱정보다 기대를 품게 되니까.
이 밤을 버티지 못하리라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새벽에 너무나도 급격하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여동생은 시작의 기대가 사라지기도 전에 끝이 와버린 언니를 앞에 두고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다. 내 발걸음도 허둥거려진다.
그러나 그런 보호자 앞에서 나도 같이 막막해할 수는 없다. 같이 울 수는 더더욱 없다. 최대한 차분하게 보호자의 슬픔을 지켜주어야 한다. 슬픈 시간을 온전히 슬플 수 있게 담담하게 지켜보며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했다.
집에 오니 멍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제 언니와 형부가 와서 같이 점심을 먹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 집 앞 이 주차장을 셋이 지나가면서 수다를 떨었다.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지저분해진 내 차를 보고 세차 좀 하라고 지청구를 했던가.
어제가 기억나서, 오늘 새벽이 떠올라서 이제야 ‘언니’라는 단어에 눈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