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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y 28. 2023

엄마는 예뻐요, 지금도

         

엄마 곁을 지키던 세 딸의 눈이 퉁퉁 부어있다. 눈자위는 새빨갛다. 아마도 밤새 엄마 머리를 쓰다듬다가 볼을 부비다가 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온기가 돌아올까 싶어 식어가는 손과 발을 열심히 주물렀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마웠다는 말도 귀에 대고 속삭였을 것이다. 이제는 고생 그만하시고 편히 쉬시라는 기도도 전했으리라. 숨이 느려졌을 때, 엄마 잘 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흐느껴 울었겠지.    

  

맏딸이 거즈로 된 손수건을 깨끗이 빨아와서 창백해진 엄마의 얼굴을 닦는다. 둘째는 머리를 빗겨드리고 모자를 씌워드린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구슬로 꽃을 수놓은 장식이 달린 모자다. 막내딸이 옷을 가져온다. 세 딸이 힘을 모아 환자복을 벗기고 꽃무늬가 있는 블라우스를 입히고 바지를 입히고 보드라운 면으로 된 양말을 신겨 드린다.     


“아유, 모자도 옷도 다 꽃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우리 엄마 꽃을 아주 좋아하셨어요.”

“아주 멋쟁이셨어요.”     


눈물범벅인 얼굴로 딸들이 웃는다. 이름에 봄‘춘’ 자가 들어가는 그분은 그렇게 딸들의 꾸밈을 받고 떠나셨다.      


소풍날 아침 엄마가 딸을 앉혀놓고 물 바른 손바닥으로 잔머리를 가라앉히고 빗질을 해서 머리를 쫑쫑 땋아주던 것처럼, 새로 산 원피스를 입혀주고 흰색 타이즈를 신겨주던 것처럼 마흔이 넘고 쉰 살이 넘은 딸들이 마지막 소풍 가는 엄마를 예쁘게 예쁘게 치장해 드렸다.   


   

엄마가 예뻤으면 하는 마음은 다른 집 딸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이십 년을 살다 온 성희 씨의 딸도 매일 아침 엄마에게 화장해 드린다. 회색 눈썹연필로 자연스럽게 눈썹을 그려드리고 꽃자주색 립스틱을 입술에 살짝 발라 드린다.      


젊어서 꽤 인기가 많으셨겠다고 말을 건네자 딸은 핸드폰에서 엄마의 한창때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검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눈이 큰 여인이 아름답게 웃고 있다. 여성복 판매장을 오래 하셨다더니 옷 입는 감각도 뛰어나다. 스팽글이 별처럼 박혀있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 같다.      


딸은 내게 엄마 사진을 이것저것 보여준다. 나는 딸과 이마를 맞대고 사진 구경을 한다. 우리 엄마 정말 멋쟁이셨는데 오래 떨어져 있어서 보고 싶은 마음을 너무 참다 보니 고칠 수 없는 병이 난 것 같다고 딸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명랑하던 엄마 자랑이 떨린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는 딸의 눈빛이 젖어있다. 나는 성희 씨를 쳐다보며 예뻐요, 멋져요 감탄사를 연발한다. 왼손은 성희 씨에게 엄지 척을 보내면서 오른손으로는 가만히 성희 씨 딸의 어깨를 감싸면서 토닥인다.     



우리 엄마도 꽃을 좋아하신다. 이번 생신 때도 꽃 화분을 몇 개 사다 드렸다. 옷도 꽃무늬 옷이 많다. 커다란 작약이 그려져 있는 웃옷도 있고 자잘한 풀꽃 무늬가 있는 바지도 있다. 젊어서는 에나멜 하이힐을 신는 멋쟁이셨지.      


울 엄마 봄옷을 새로 사드려야겠다. 비록 무릎도 시원찮고 허리도 굽어 잘 걷지를 못해 멀리 꽃구경은 못 가시지만 요즘 유행하는 것으로 사드려야겠다. 핸드폰 화면을 열면 인터넷 쇼핑마다 이쁜 옷은 많으니까. 엄마랑 얼굴을 가까이하고 같이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옷을 골라봐야겠다. 꽃무늬가 들어있는 것으로, 내 눈엔 좀 촌스러워 보여도 엄마가 이쁘다면 당장 사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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