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꽃이 피었다. 삼 년 전 엄마 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겨울 무렵 이 집으로 이사를 하고 이듬해 봄기운이 돌자마자 엄마는 가져다 심으라고 하셨다. 꽃을 손으로 기르는 재주는 없고 눈으로 즐기는 재주만 있는 난 못 들은 척했다. 엄마는 매일매일 전화를 해서 가져가라고 하셨고 급기야 우리 집에 오실 때 커다란 비닐봉지에 퍼담아 오셨다.
삼 년 전에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는 이파리 하나 없는 삐뚜름한 막대기였다. 어른 팔길이 정도로 어른 손가락 굵기로 볼품이 없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싹이 돋고 아가 손바닥처럼 펼쳐지더니 여름이 다가올 무렵엔 어른 손바닥만큼 커졌다. 마당 한 편이 수국잎의 초록으로 무성했다.
연두색 도는 노랑의 꽃봉오리들이 가지 꼭대기마다 한 덩어리씩 달렸었다. 수국꽃은 한 송아리에 수십 개의 꽃봉오리가 모여있다. 푸른 기가 도는 노란색이 조밥을 한 숟갈씩 퍼 얹어놓은 것 같다. 좁쌀알처럼 작던 꽃봉오리가 수수 알 만큼 자라더니 비가 한 번 오고 나자 녹두 알처럼 커지고 다시 비가 오자 콩알처럼 동글고 봉긋해졌다.
푸른 수국꽃이 피었다. 꽃 피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치 밥을 할 때 뜸을 들이듯 필 듯 말 듯 뜸을 들였다. 꽃송아리의 가장자리 꽃부터 푸른 물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지 사오일은 지났는데 아직 가운데까지 꽃물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나는 물이 들기 시작한 송아리 몇 개를 잘라 내가 일하는 곳으로 가져갔다. 그중 하나를 그녀의 병실에 가져가 유리병에 꽂아 두었다. 그녀는 지난 사월에 입원했다가 통증도 참을만하고 아직은 혼자 움직일 만하다고 열흘쯤 있다가 퇴원했다.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올 줄 몰랐다.
피부가 뽀얗고 동그스름한 얼굴의 그녀는 피어나기 시작한 수국꽃 같다.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 이십 대 후반의 딸이 엄마 곁을 지키고 있는데 딸도 엄마를 닮아 뽀얗고 동그란 얼굴이다. 어려 보여 아직 십 대 소녀처럼 보인다. 엄마와 딸은 크고 작은 수국꽃 두 송아리가 서로 기대 피어있는 것 같다.
새벽처럼 푸른 수국꽃이 피었다. 그녀의 병실에. 어젯밤 병실에서 만난 그녀는 그제보다 몸이 더 부어있었다. 오늘 새벽 꽃이 정말 이쁘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가끔 시와 수필을 쓴단다. 모아서 책을 내고 싶었다며 말을 흐린다. 희미하게 웃는다.
피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국꽃은 피어있는 시간도 길다. 그녀의 방에 가져다 둔 수국꽃이 이제 색이 돌기 시작했으니 아마 한 달은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꽃 하나하나가 푸른 물이 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꽃송아리 전체가 온전히 푸르게 새벽으로 물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저 수국꽃보다 먼저 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