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이야기 수집가다. 이야기를 찾아서 내린다. 새벽 불 꺼진 유리창을 두드려 찾은 이야기를 세로 쓰기로 적으면서 내린다.
유리창 너머는 작은 방이다. 화장실이 있고 냉장고가 있고 나무 탁자가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침대가 있다. 흰 시트가 씌워진 침대에는 아픈 사람이 잠들어 있다.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딸이거나 아들인 사람이다. 다른 침대는 폭이 좁고 높이가 낮다. 누워있다가 다른 편으로 돌아눕기 불편한 폭이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엄마이거나 혹은 아들 아니면 딸이 거기에 잠들어 있다. 아픈 가족을 깨울까 봐 조심조심, 아픈 가족의 기척에 재빨리 일어나기 위해 귀를 깨운 채 웅크리고 선잠을 자고 있다.
한 달일지 일주일일지 혹은 사나흘, 아니면 당장 오늘이나 내일일 수도 있는 이별을 앞둔 좁고 낮은 침대에 있는 사람들은 불편한 잠을 불평하지 않는다.
서른 초반의 아들은 아주 작은 앓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간호사실로 달려 나와 엄마가 아파한다고 전해준다. 어젯밤에는 세 번을 나왔는데 오늘 밤에는 벌써 다섯 번째다. 자다 깬 두 눈이 충혈되어 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다시 잠이 드는 엄마를 바라보는 눈이 먹먹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품에 안겨 잠투정을 하던 막내아들은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다시 웅크려 눕는다. 혼자 이불을 끌어 덮는다.
칠십 대 후반의 아버지는 환자의 침대 곁에 앉은 채로 잠들어 있다. 딸이 팔이 아프다고 해서 주물러주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진통제 주사가 더 빨리 병을 나쁘게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잠이 들었다가도 인기척에 벌떡 일어나 다시 딸 곁에 앉아 팔을 주무르게 된다. 병구완에 지쳐 앉은 채로 잠이 든 아빠는 단단한 나뭇가지 같은 두 팔을 쫙 벌리고 달려와 품에 안기던 어린 딸의 꿈을 꾼다.
비는 새벽 불 꺼진 유리창을 두드려 만난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102호 아들의 이야기와 105호 아빠의 이야기가 서로 만난다. 엄마에게 다 못한 이야기와 딸에게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같이 흐른다. 서로 안고 운다. 세로 쓰기였던 비의 이야기들이 땅에서 가로 쓰기로 변하면서 흐느낀다.
눈물이 섞인 이야기들은 일렁거리며 길을 돌아 출렁거리며 강에 이르러 바다로 흐른다. 이윽고 바다를 떠나 작은 물방울이 되는 날 하늘로 오른다. 차곡차곡 쌓인 그리움은 천 가지, 만 가지 모양으로 변하는 구름이 된다. 칭얼대는 어린 아들을 안아주는 엄마의 얼굴이 되고 아빠에게 달려오는 어린 딸의 모습이 된다.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이야기가 적힌 채 내린다. 꽃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꽃 귀에 매달려 전한다. 한 줄 전하며 웃고 또 한 줄 전하며 운다.
꽃은 비의 이야기를 듣는다. 귀를 활짝 열고 듣는다. 한 방울 한 방울 남김없이 듣는다. 같이 울며 웃으며 듣는다. 이야기로 꽃이 붉어진다. 붉어진 꽃이 진다. 핀 채로 진다. 이야기를 품은 채로 진다. 장대를 타고 오르던 능소화, 비를 만나 뚝뚝 떨어진다. 꽃 진 자리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