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려면 작약처럼

by 최희정


삼월 초, 이른 봄 햇살이 파고든다. 땅 갈라지고 흙이 떤다. 굼실굼실 붉은 것 솟아오른다. 불꽃 피어오른다. 작약의 순이다. 여린 초록으로 오는 무른 새싹들과 달리 작약은 처음부터 붉다. 뜨겁다.




이파리가 무성해지는 사월이면 작약도 초록이긴 하다. 하지만 잎맥과 줄기는 여전히 붉다. 빨강이 핏톨처럼 작약의 온몸의 혈관을 구른다. 뛴다. 달린다.




오월이다. 꽃봉오리는 야무지게 동그랗다, 틈새 없이 단단하다. 순순히 곁을 내주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혼자 안으로 뜨거움을 모은다. 가다듬는다. 그 속이 얼마나 붉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저녁도 썰렁하지 않고 밤도 춥지 않은 때가 온다. 그런 날 한낮 드디어 작약꽃이 핀다. 봉오리가 터지며 붉은 꽃잎이 펼쳐진다. 한 번 열린 마음은 다시 동그랗게 모이지 않는다. 햇빛에 취해 꽃잎 하나하나가 낭창하다. 다시 단단해지지 않는다. 햇볕에 부풀어 꽃술조차 노랗게 일렁인다.




봉오리를 모으고 꽃을 펼치는 순간 전부가 작약의 의지다. 꽃잎이 지는 순간도 작약이 정한다. 그러므로 꽃이 질 때도 망설임이 없다. 칼날 끝에 맺힌 핏방울이듯 뚝 떨어진다. 남은 사랑을 베어내면서. 작약꽃은 그렇게 진다.




땅은 아낌없이 받아먹는다. 붉음이 낭자하던 사랑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싹싹 핥아먹는다. 작약은 언제 붉었냐는 듯이 사라진다. 봄날 태양의 빛을 휘어잡던 꽃의 붉음도, 여름을 지키던 붉은 줄기도 사라진다. 핏기 빠진 심장처럼 퉁그러진 씨앗만이 남는다. 씨앗조차 가을 지나 겨울 되면 없다. 초라한 비석 같은 마른 가지 하나 남겨두지 않는다.




공원길 거기, 갈색 칠이 벗겨진 벤치 옆 작약꽃이 울컥울컥 피던 자리, 겨우내 아무것도 없다. 꽁꽁 언 땅 맨흙이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 밤을 덮고 어깨를 모으던 연인도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봄이 오고 땅이 갈라질 때 흙이 떨리면서 불꽃이 솟아오를 것이다. 작약의 붉은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꽃이 지고 사랑이 끝나면 사랑이란 것,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질 것이다.




사랑, 그것을 하려거든 처음부터 뜨겁게 시작해야겠다. 사랑하는 내내 붉어야겠다. 끝을 맞이할 때는 흔적 없이 사라져야겠다. 저 작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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