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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08. 2023

리듬 속에 춤을


장마가 한창일 때 몸살이 난 적이 있었다. 강한 비가 내리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는 길을 오래 운전하고 났더니 긴장이 풀리면서 열이 났다. 체온계로 재보니 39도가 넘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허리도 아프고 등도 뻐근하고 무릎도 시큰했다. 얼른 해열제를 챙겨 먹고 누웠다. 


엄마가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은 혹시 코로나 아닌지 걱정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열이 아주 높아서 해열제를 먹고 누워 있다고 하니까 전화를 걸어와 응급실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일단 약을 먹었으니 열이 내리는지 지속되는지 경과를 본 후 병원을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딸깍.”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들이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아들은 누워있는 내 옆에 앉는다. 내게 좀 어떠냐고 묻는다. 열을 다시 재보니 다행히 열은 없다.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거 이온 음료예요. 퇴근하면서 편의점에서 사 왔어요. 컵 가져올 테니 좀 드세요.”


아들은 봉지에서 음료수병을 꺼내 내 옆에 놓고는 주방에 가서 컵을 가져와서 지금 먹겠냐고 묻는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나중에 먹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아들이 병뚜껑을 우두둑 돌려 딴다.


“엄마 손힘 약하니까 미리 뚜껑 따놨어요. 드시고 싶을 때 편하게 드세요.”


고열에 들떴다가 약으로 억지로 가라앉혀져 묵지근하던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 끝에 깨끗해진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본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달콤한 잠이었다.


다음날 아들에게 아침을 차려주면서 어젯밤에 엄마를 걱정해 줘서 감동했다는 말을 해줬다. 


“엄마도 내가 아플 때 그렇게 해줬잖아요. 지난번에 열 많이 났을 때 새벽까지 안 자고 계시다가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니까 부랴부랴 응급실에 데려가고. 그때 수분 보충하라고 이온 음료도 큰 병으로 사다 주셨잖아요.”


아들의 말에 우유를 섞어 푼 달걀 물을 입힌 식빵 한 입이 목에 걸린다. 아들은 부드럽게 잘 만들어졌다며 잘 먹는데 그런 아들을 보면서 나는 목이 멘다. 꿀꺽 마신 커피 한 모금이 뭉클하게 가슴을 타고 내려간다. 


두 달 전쯤 어떤 일로 아들과 부딪힌 일이 있었다. 정리 정돈을 잘하지 않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했더니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그 퉁명스러움에 화가 나서 더 큰 목소리로 잔소리를 했고 아들도 더 심하게 짜증을 냈다. 엄마에게 지지 않고 대드는 아들이 섭섭해서 며칠 말도 안 했다. 밥도 먹건 말건 신경 안 쓰고 나만 차려 먹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었던 몇 년 전 어버이날에는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를 방에서 몰래 혼자 불러 녹음을 한 후 깜짝 선물로 SNS로 보내준 적이 있다.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었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 노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춘기가 심할 때는 일박이일의 가출을 시도한 적도 있고, 그런 아들 녀석이 한심해서 가슴을 친 적도 있다. 화가 난 내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야단을 치면 귀에 솜을 틀어막은 것처럼 못 들은 척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차려주는 고기반찬은 잘만 먹어서 얄밉기도 했다. 


우리 애는 항상 엄마에게 잘하는 착한 아이였다는 말은 못 한다. 그렇다고 항상 나를 애면글면 속을 태우게 만들지도 않았다. 나는 여느 부모처럼 자기 앞가림 잘하면서 살길 바라고 아들은 자기 나름대로 앞날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23년을 같이 살고 있다. 


여전히 자기 방 정리 좀 잘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책상 위에서 지저분하게 뒹구는 빈 병을 보면서 혼자 독립해서 살면 가관이겠다는 답답함도 있다. 그래도 아픈 엄마를 챙겨주는 것을 보면 타인의 아픔을 신경 쓰고 위로해 줄 줄도 아는 것 같아 기특하다. 엄마가 자기를 챙겨준 일을 기억하고 이온 음료를 사 왔던 것처럼, 친구나 동료 혹은 애인이 아플 때 다정하게 돌봐줄 것이 틀림없다. 


어찌 보면 아들과 나 사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무용수 같다. 항상 손을 잡고 있지도 않다.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한다. 항상 발을 맞춰 같이 발을 옮기지도 않는다. 어떨 때는 나는 앞으로 나가고 아들은 뒤에 있다. 반대로 아들이 앞서 가버리고 나는 뒤에서 주춤거리며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다. 항상 마주 보지도 않는다. 서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돌기도 한다. 가끔 발이 꼬여 서로의 발을 밟기도 하고 발등을 찍혀 찡그리기도 한다. 이럴 때는 춤을 멈추고 잠시 쉬는 게 좋다. 


아들과 나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는 모두 그런 것 같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다가 동작이 어긋나거나 박자를 놓치게 되면 잠시 떨어져 쉬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 춤을 이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리듬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춤이 아니라 격투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으려면 서로의 동작을 잘 맞추면서 리듬을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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