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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26. 2023

그리움은 구름이 되고 노래가 되어



새벽 어스름 사이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난다. 여름 매미가 두 개의 돌을 소리 나게 부딪혀 얻는 불꽃 같은 울음으로 쨍한 아침을 불러온다면, 이즈음의 풀벌레는 부싯돌에 나뭇가지를 비비듯 날개를 비벼 아침의 빛을 서서히 일으킨다. 크고 작은 풀잎들이 땅에서 켜를 이루듯 풀벌레들 소리가 풀잎 아래서 켜를 이룬다.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켜를 이루는 것이 합창이다. 어제는 해오름극장에서 한국 남성합창단의 ‘창단 제65주년 기념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한국 남성합창단’은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으로, 1958년에 대학생들이 강의실 작은 공간에서 화음을 맞추면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65년간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최장수 남성합창단이다.


나는 김소월의 ‘구름’이라는 시로 곡을 만든 박나리님의 연락을 받고 다녀왔다.


저기 구름을 잡아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카만 저 구름을
잡아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구만리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 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로 나리거든
생각하라, 밤저녁, 내 눈물을


김소월의 ‘구름’ 전문이다. 구름을 타고 그대에게 가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차라리 비가 되어 내리겠으니 그 비를 내가 흘리는 눈물이라 여겨달라는 시다. 박나리님이 곡을 붙여 어제 처음 연주되었다. 구름을 타고서라도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오고 싶은 그리움이 노래가 되었다.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은 난층운이다. 겹겹 켜로 쌓인 구름이다. 온통 파묻히게 하는 구름이다. 그리움은 구름과 발음이 비슷하다. 구름이 쌓여 비가 되듯 그리움이 쌓이면 눈물이 된다. 어제 공연 전에 만난 그녀의 눈이 빨개졌다. 김소월이 말하는 붉게 물든 구름이 보였다. 합창을 들으며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먹먹했다.


그녀는 최근에 코로나를 앓아 후각과 미각이 사라졌다고 한다. 나도 코로나에 걸렸을 때 맛과 냄새를 잃었었다. 딸이 선물해준 핸드크림의 장미꽃 향을 맡을 수 없었다. 아들을 주려고 끓인 미역국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냄새와 함께 음식의 여러 가지 맛도 사라져서 당황스러웠다. 속상했고 슬펐다. 익숙한 냄새와 향기 그리고 맛은 추억이 들어있는 것이라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던가. 그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망연해졌었다.


박나리는 한국에 도착했는데 한국 냄새를 맡을 수 없어서 슬펐다고 한다. 아무 맛도 향도 느낄 수 없는, 특히 좋아하는 것들의 향을 느낄 수 없는 그게 어떤 상황인지 알아서 나도 슬펐다.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후각과 미각이 회복되어 고향의 냄새와 맛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칠월의 장마가 끝나고 팔월의 태풍과 폭우가 지났다. 뜨거운 기운이 빠진 아침이 서늘하다. 산책하기 좋다. 그녀가 하루빨리 후각을 되찾아 아침 산책길에 젖은 풀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9월에 피는 들꽃들의 향기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밥상의 나물과 찌개 냄새를 온몸으로 안을 수 있기를, 새로 지은 밥 냄새를 품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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