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여기에서 그곳까지의 거리 285km. 집에서 세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네요. 큰맘 먹고 양양고속도로의 기다란 터널을 극복해 보리라 다짐하고 출발했죠. 뒤에서 큰 차가 부아앙 마빡을 들이대도 까짓 나는 내 속도대로 천천히 가면 되겠지 뭐, 그렇게 가다 보면 겁먹지 않고 잘 갈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나를 격려하면서 출발했어요. 다행히 날이 좋았어요. 그제 종일 비가 와서 어제도 비가 올까 봐 걱정했거든요.
네비 선생님이 외곽순환도로 반 바퀴 돌아 퇴계원에서 춘천 쪽으로 빠지래요. 어제 양평 갔던 길도 같은 경로라서 가뿐하게 해냈어요. 46번 도로를 따라가다가 화도라를 곳에서 양양고속도로 진입했어요. 드디어 시작이다. 쫄지 말고 의기양양하게 달려보자고 다짐을 하면서 핸들을 꽉 잡아요.
오른발이 자꾸 액셀을 밟아요. 차가 쑥 나가요. 휴가철도 끝난 평일 낮이라 차도 별로 없는 고속도로를 정말 고속으로 쓔우욱 달려요. 드디어 터널이 나타나요. 양양고속도로는 정말 터널이 많죠. 짧은 것 긴 것 예순 개도 넘어요. ‘인제양양터널’이라고 10km가 넘는 것도 있죠. 이곳이 온몸을 긴장시키는 바로 그 터널이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장감이 뇌세포를 쫀쫀하게 하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요. 드디어 가장 긴 터널 진입. 괜찮아. 담담하자.
어라, 이게 웬일인가요. 몇 년 전 그 숨 막히는 답답한 느낌이 있던 그 터널이 아닌 거예요. 그냥 터널이네요. 남산 터널 지나듯 수월하게 지나요. 오히려 남산 터널은 항상 막혀서 답답한데 여긴 슈웅 슈웅 달리니 신나요.
터널 속에서, 터널 같았던 시절이 떠올라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한 시간이었죠. 밤도 아인데 밤길처럼 어두웠죠. 혹시라도 우당탕탕 사고라도 날까 봐 조마조마했었죠. 두 눈 부릅뜨고 핸들 꽉 잡고 가다 보니 길고 긴 터널이 끝났어요. 나는 터널 같은 시간에서 벗어났어요.
동해고속도로 들어서서 한참 달리다 보니 바다가 보여요. 동해휴게소에 들러요. 이곳은 화장실에서 바다가 보여요. 멋져요. 묵호항에도 들려요. 셀카를 찍는데 자꾸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어요. 자유분방한 앞머리가 사진으로 남았어요. 물론 흰 파도와 푸른 바다와 검은 바위를 배경으로 잘 나온 사진도 있어요. 묵호 앞바다 조용하고 좋아요. 꺄아아아.
집에 돌아올 때 밤 운전은 어떡하지. 깜깜한데 무섭잖아 속으로 살짝 걱정이 돼요. 이런 마음을 전화로 애인에게 보내요. 겁먹지 말래요. 침착하게 갔던 길을 되짚으면서 오면 된대요. 잘할 수 있대요. 간단한 몇 마디 말에 사르르 걱정이 없어지고 힘이 나요. 덕분에 밤 운전도 무사히 잘하고 왔어요. 오는 길에 홍천 휴게소에서 커다란 달도 봤어요. 휴게소 달은 언제나 멋있어요. 슈퍼 블루문은 특히 멋있네요. 사진을 찍어요. 집에 도착한 후 뿌듯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는데 여전히 환하게 밝은 달이 보여요. 내게 엄지 척 달빛을 보내요. 으쓱해져요.
달빛 아래서 애인에게 달 사진을 보내요. 묵호 바닷가에서 찍은 이쁜 내 사진도 보내요. 답장이 없어요. 자나 봐요.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