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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01. 2023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 쓴 남자아이 둘이 자전거를 타고 내 곁을 휙 지나가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안장 위에서 엉덩이를 들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것을 보니 이제 막 어른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 같다.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인다.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린다. 서로 쳐다보고 웃다가 한 사람이 더 힘차게 페달을 밟고 앞으로 달리면 다른 아이도 같이 속도를 내서 달린다. 한 녀석이 노래를 부르자 다른 아이도 따라부른다.      


아이들 입에서 나온 노래 가사가 익숙하다. 나도 들어본 노래다. 가사 검색을 해본다. ‘이세계’라는 인디밴드의 ‘낭만젋음사랑’이라는 노래다. 스물한 살의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세 가지와 그것에 대한 답을 못 찾아도 괜찮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저 나이에 중요한 것이 ‘낭만’이고 ‘젊음’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그저 놀랍다. 나의 스물한 살을 돌아보면 ‘젊음’을 살면서 젊음의 '유한'을 몰랐다.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두려웠고 ‘낭만’을 찾기에는 시대가 너무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막막했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었다.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젊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우린 사랑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이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시간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열두 살 어린 시절에는 매미가 땅속에서 7년을 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2주 정도 산다는 사실이 그냥 사실이었다. 땅속에서 오랫동안 벌레로 산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파브르 곤충기’라는 책에 나온 내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많아진 어느 날부터는 ‘땅속에서 7년을 산다’라는 문장에서 단어들이 각각의 의미로 다가왔다. ‘땅속’이라는 단어와 ‘7년’이라는 단어가 서로 스며들어 오래도록 무거움을 견뎠다는 의미로 왔다. 그런 존재에 대한 경외심도 든다. 그렇게 버티고 올라와 온몸을 울음주머니 삼아 밤낮없이 울어대며 다음 세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생을 거는 집요함을 보면서 산다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괜찮지 않고 자꾸만 무언가를 더 알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아는 것이 많아져서 괜찮은 것만도 아니었다. 겁도 많아졌다. 세상사 알면 알수록 겁이 난다. 움츠리게 된다. 알게 된 것들을 다 안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아는 척하지 않는 게 오히려 괜찮은 일도 있다는 것조차 알게 되었다. 그러니 움츠리다 못해 땅속에서 7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햇볕이 뜨겁던 어느 여름 한낮 남자아이 둘이 자전거를 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곁을 휙 지나간다. 나는 멈춰서서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본다.      


안장 위에서 엉덩이를 들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것을 보니 이제 막 어른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 같다.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인다.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린다. 서로 쳐다보고 웃다가 한 사람이 더 힘차게 페달을 밟고 앞으로 달리면 다른 아이도 같이 속도를 내서 달린다.      


소년들의 뒷모습이 장마 끝나고 가지가 울창해진 공원의 나무들처럼 출렁거린다. 어쩌면 등에 멘 가방 속에 ‘파브르 곤충기’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요한 매미 소리를 뚫고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날아온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린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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