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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04. 2023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그늘막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그늘막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어제처럼 숨이 턱턱 막히게 덥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5분 정도 정류장에 서 있는데 팔에 닿는 공기가 뜨겁다. 냉방이 잘 된 버스에서 금방 내렸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늘에 있는데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버스를 타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내 쪽으로 오게 머리 위 냉풍구를 돌려놓고 가방에서 부채를 꺼내 부채질을 한다. 더운 기운이 조금 가라앉는다. 버스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려 정류장마다 사람을 태우고 내려준다. 좀 전에 버스를 탄 사람이 내 앞에 서자 다시 열기가 느껴진다. 


이윽고 버스는 종각을 지나 종로 5가를 거쳐 대학로 쪽으로 접어든다. 방통대 앞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가 건널목 신호등에 걸려 멈추었다. 시간은 정오를 지나 한 시를 향해 가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대낮의 뙤약볕으로 하얗게 떠 있다. 


건너편 길에 민소매 옷을 입고 선글라슬 끼고 지나가는 젊은이가 보인다. 두 개의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옮기는 할머니도 보인다. 할머니보다 한두 걸음 앞에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걷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아마 근처에 있는 서울대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서 나오는 노부부인 듯하다.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춘다. 뒤따라오던 할머니도 멈춘다. 구부정한 허리로 양손에 지팡이 하나씩 잡고 서서 할아버지를 본다. 할아버지는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지갑 속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낸다. 왔던 길을 돌아서서 몇 걸음 걷는다. 


거기 사람이 한 명 엎드려 있었다. 검은 바지를 입고 검은 윗도리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8월 한낮의 불볕더위 속에서 길바닥에 배를 깔고 기어가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다가가 몸을 낮춰 돈을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와 함께 떠났다. 


나는 버스 안에서 부채질하던 손을 멈추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걸인을 향해 몸을 수그리는 것이 보였다. 바로 옆 가판대에서 음료수를 사던 남자다. 그는 음료수병뚜껑을 따서 시커먼 모자 아래에 놓았다. 음료수를 사면서 받았던 거스름돈 중 한 장도 같이 건네준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서서 지하철 출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에게 돈을 주기 위해 일부러 음료수를 산 것 같았다. 


배를 깔고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과 가던 길을 돌아 돈을 쥐여주는 할아버지와 두 개의 지팡이로 구부정한 몸을 지탱한 체 불평 없이 기다리고 서 있던 할머니와 일부러 음료수를 사서 건네주는 남자가 네 개의 꼭짓점이 되어 사각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정수리에 내려 꽂히는 햇볕을 피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그늘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된 더위로 숨이 막히는 2023년 8월 3일 정오에서 오후 한 시로 넘어가는 한낮 대학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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