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서울의 도로는 어디나 막힌다. 상도역 방향으로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환해진다. 불꽃이다. 노란색으로 점점이 빛나는 불꽃들이 아주 커다란 원을 만들며 검은 밤하늘로 퍼져나간다. 연이어 붉고 푸른색의 작은 원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차 안에서 갑자기 만난 풍경에 혼자서 큰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하늘을 본다. 우회전해서 상도역을 지나 터널을 빠져나오니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밖을 보니 수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게 보인다. 둘씩 셋씩 짝을 이루어 걷고 있다. 아마 불꽃 축제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오늘 여의도 불꽃 축제가 있었나 보다. 뉴스 사진을 찾아보니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있다. 공중에서 찍은 사진 속에는 축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강변에 펼쳐놓은 돗자리들이 마치 여러 색의 작은 헝겊을 이어 붙인 커다란 조각 이불 같다. 나도 저기에 저렇게 돗자리를 펼치고 불꽃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아들이 열두 살 때 그리고 열세 살 때 연이어 두 해 동안 불꽃 축제에 갔었다. 한 번은 아들과 둘이 갔었고 또 한 번은 아들 친구와 셋이 갔었다. 공부방을 하던 때라 일을 마치고 가느라 일찍 가서 여유 있게 좋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미 어두워진 다음에 갔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이미 낮부터 자리를 잡은 사람들로 빼꼭해서 우리 세 사람이 앉을 돗자리를 펼만한 작은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어찌어찌 겨우 자리를 잡고 구경을 했다.
툭툭. 공연이 시작되고 하늘 높이 붉은색의 커다란 공이 만들어진다. 붉은 공 주변으로 작고 노란 공들 여러 개가 나타난다. 투두둑 툭툭. 검은 허공으로 쏘아 올려진 빛줄기가 분수처럼 다시 흘러내린다. 빨강과 파랑의 불꽃이 휘돌면서 태극 문양을 만든다. 투두 두두두두두 공연의 마지막에 이르자 아주 많은 폭죽이 동시에 터지면서 밤하늘은 온통 하얀 불꽃으로 뒤덮인다. 끝날 것 같으면 또 터진다. 계속 터진다. 폭죽 터지는 소리와 불꽃이 겹쳐지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도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이마가 환해지는 순간이다. 반짝이는 불꽃이 사람들의 눈동자로 스며들어 시신경을 밝히며 기억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강물 위로 떨어지는 수많은 불꽃과 사람들이 쏘아 올린 감탄사가 밤하늘에서 만나 찬란한 추억의 입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아들에게 문자로 불꽃 축제에 갔던 것을 기억하냐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기억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떠밀리듯이 여의도를 걷던 일도 기억난단다. 서 있어도 저절로 걸어질 만큼 사람이 많아서 신기했단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은 해장국도 기억난단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열세 살 사내아이 둘이서 뚝배기 가득한 순댓국을 국물까지 싹싹 핥듯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빈 그릇을 내게 내보이며 뿌듯해하던 얼굴도 떠오른다. 친구와 마주 보며 킥킥거리던 얼굴도 기억난다. 그 표정이 재미있어서 사진도 찍어두었다.
가다 서다 하며 겨우 한강대교에 이르렀을 때 차들이 더 많아졌다. 노량진과 상도동과 흑석동에서 나온 차들이 엉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앞차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을 때 딸이 사진을 보내왔다. 나무들 사이로 불꽃이 화려하게 뿜어져 올라가는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자 딸과 함께 보았던 불꽃놀이가 떠오른다. 딸아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둘이서 파주 통일 동산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갔었다. 저녁 무렵 시작한 공연은 밤이 되어서 끝났다. 우리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가 한꺼번에 빠지면서 정체가 되면 주차장을 벗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나섰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내 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두두두두 파파팍 팡’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아주 커다랗게 들렸다. 그리고 하늘 한가득 불꽃이 펼쳐졌다. 딸과 나의 머리 바로 위에서. 보통 폭죽을 쏠 때는 안전을 위해 사람들 머리 위로 바로 쏘지 않는다. 그러니 그날도 공연장 바로 위가 아닌 그 옆에 있는 주차장 방향으로 쏘아 올렸던 것 같다. 때마침 우리는 거기 있었다. 그리고 바로 머리 위에서 불꽃이 터지며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딸과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한껏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천수만 개의 빛의 방울들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는 같아 아찔하고 황홀했다. 이 장면은 살면서 보아온 가장 멋지고 화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십여 년이나 지난 지금은 그날 밤하늘에 가득했던 불꽃의 모양이나 색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잊고 있었다. 하지만 딸이 보내준 사진을 보는 순간 그때의 짜릿함이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다시 불꽃으로 팡팡 터진다. 다시 빛난다. 아마도 또 십 년이 지나고 십 년이 더 지나서도 어디선가 불꽃놀이를 본다면 그 장면은 빛으로 환하게 떠오를 거다. 그러면 된 거다. 아들은 ‘불꽃 축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열세 살 소년 시절 가을 어느 날 밤하늘에 무수히 터지던 꽃불을 기억한다면 된 거다. 딸도 갑자기 폭죽이 터지며 밤하늘을 밝히는 불꽃을 보게 될 때 스무 살 무렵 파주에서 보았던 바로 머리 위에서 펼쳐진 빛의 순간을 기억하면 된 거다.
길은 하염없이 막히고 있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많은 사람을 바라본다. 모두 표정이 밝다.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정체가 풀릴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답답하지 않다. 오늘 불꽃놀이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 오래전 시간 속에서 아들과 함께했던, 딸과 함께했던 불꽃놀이를 꺼내 쏘아 올린다. 나의 아이들이 사는 동안 어느 날 문득 앞이 캄캄해질 때 아주 잠시라도 불꽃이 팡팡 터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앞이 다시 환해지길 바라며 딸이 보내준 사진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