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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13. 2023

가을 햇살로 끓인 버섯전골

언니 집에 들어서자마자 통통통 도마질 소리가 난다. 버섯을 썰고 있다. 표고는 반달보다 갸름하게, 느타리는 더 가늘게 쪽쪽 찢어서 준비한다. 봄동 같은 배추도 잎잎 갈라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는 중이다. 이미 썰어진 두부는 하얀 낯에 물기가 촉촉하다.


"처제는 우리가 맛있는 거 해 먹으려고 준비하는지 어떻게 알고 왔어? 몰래 해 먹으려고 했는데."


형부가 너스레를 떤다. 어떻게 알긴, 간다고 전화했더니 버섯두부전골 먹으러 빨리 오라고 한 사람이 형부였으면서.


국물이 끓나 보다. 멸치 냄새가 거실로 퍼진다. 이어서 매운 냄새가 따라온다. 형부가 청양고추 냄새가 칼칼하게 퍼진다며 컥컥거리면서 수선이다. 언니는 매운 걸 좋아하니 아마 고추를 많이 넣은 것 같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도 목이 칼칼해진다. 허공에 쌍칼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재료를 다 넣고 끓인 버섯전골을 식탁에 차려놓고 먹는다. 이동식 전기레인지를 꺼내 올려놓고 더 끓이면서 먹는다. 국물을 떠먹어본다. 켄. 맵다. 혀가 저절로 메롱을 한다.


가을 버섯에서 살짝 비 온 뒤 산을 오를 때 나는 흙내가 난다. 스르륵 떨어지는 마른 잎 냄새도 난다.  버석버석하던 생버섯이 뜨거운 국물에서 느른해진다. 건져서 입에 넣고 씹으니 매끈하고 쫄깃하다. 가을 맛이다. 뻘건 고춧가루 양념 없이 집간장과 새우젓으로 국물 간을 해서 끓일수록 버섯의 맛이 진해진다. 창 밖에서 들어온 햇살이 냄비에서 올라온 김을 하얗게 휘감아 피어오르게 한다. 먹으면서 나른해진다.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연신 버섯을 집어 먹는다. 형부는 먹으면서 맛있다고 감탄을 연발한다. 만든 언니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말이다. 버섯도 맛있고 달큼하게 익은 배추도 맛있다고 한다. 오늘 점심에 버섯전골을 먹기로 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한다. 언니 동생인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먹다보니 국물까지 남김없이 한 냄비를 다 비웠다. 다 먹고 일어나니까 배가 너무 땡겨서 다시 앉았다. 후하후하 심호흡 좀 하고 일어나야겠다.


의자에서 겨우 일어났는데 형부가 커피를 한 사발 준다. 다시 숨이 가빠온다. 헉. 언니가 생크림 롤케잌을 준다.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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