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쯤 우유에 딸기를 넣고 으깨서 먹는다. 오늘이 그날이다. 딸기를 으깨려고 검지로 포크를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손가락 첫 번째 마디가 찌릿하게 아팠다. 몇 개월 전부터 아팠는데 검지만 사용해야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다가 지금처럼 무언가를 눌러야 할 때 느껴지는 순간적인 통증으로 내 손가락 하나가 부드럽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왼손으로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왼손에 포크를 쥐고 딸기를 으깨려는데 포크를 잡을 때의 손 모양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시 포크를 잡은 왼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오른손으로 포크를 옮겼다. 이 일이 익숙한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검지를 내밀어 포크를 눌러 딸기를 으깰 수 있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얼른 눈에 담아 뇌에 기억을 시킨 후 다시 왼손으로 시도를 해보았다. 딸기가 으깨지면서 붉은 즙이 흘러나왔다.
하나의 몸에 달린 두 개의 손이 내가 살아오는 동안의 쓰임새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하나의 머리에 의해 조종되기에 당연히 무언가를 쥐는 일은 양손 모두 편히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오른손잡이라서 칼질을 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일은 오른손이 잘한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좀 더 정교하게 해야 하는 가위질이나 연필을 잡는 일은 오른손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전화기를 잡는 일은 왼손이 더 익숙하다. 전화 속의 소리는 왼쪽 귀로 들을 때 더 또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몸의 일부분인 귀의 상태에 따른 아주 오래된 습관이라서 오른손으로 전화를 받으면 괜히 어색하고 소리에 집중이 안 된다.
새벽에 딸기 몇 개를 먹으며 두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주 대면 틈 없이 딱 붙는 닮아있는 두 손인데 그동안 살면서 서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 내 손들을 본다. 손가락 열 개를 찬찬히 보다가 다리와 허리와 내 몸을 이루는 근육과 장기도 내가 그동안 써먹은 만큼, 써먹은 방법대로 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은 왼쪽 어깨에 메는 것이 편하고 누군가와 길을 걸을 때 왼편에 서는 것이 더 편하다. 자전거를 탈 때는 디스크 수술 후 저림 증상이 남은 왼쪽 다리보다 오른쪽 다리로 페달을 힘껏 밟는다. 오른쪽 종아리에 힘을 주어 바퀴를 굴린다.
마음도 그럴 것 같다. 사는 동안 걱정과 불안에 마음을 많이 써먹었다. 원래 자신만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낙천적이지도 않았다. 젊어서 했던 응급실 근무는 내 성격에서 불안이 가지는 크기를 넓혀 주었다. 결혼 후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때도 혼자 전전긍긍하다 보니 마음의 불안이 커졌다. 게다가 좋은 일이 생겨도 기뻐하기보다는 이어서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과 살다 보니 그 사람의 불안이 너무 커져서 와르르 무너지고 가정을 덮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까지 하면서 살았다. 실제로 남편이 일이 잘 안 되고 사람이 무너질 때에는 내가 불안이라는 그 우물에 갇혀있는 것도 몰랐다. 하루하루 다급하게 생활을 해결하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을 쓰느라 검고 깊은 우물에서 나올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는 불안과 걱정이라는 우물이 편해지기 시작했었다.
그때 마음이 움직였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밥숟가락을 들고 앉아있는 내 손을 내 눈으로 보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몸이 몸을 보면서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또 이 마음은 몸을 다르게 움직이게 했다. 후다닥 일어나 플라스틱 통에 밥을 싸들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아 밥을 먹었다. 손바닥 두 개 만한 네모난 통에 한 켠에는 밥을 담고 그 옆에 반찬 두 가지를 담은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집에서 먹을 때와 달리 밥의 단맛도 느껴지고 반찬의 맛도 느껴졌다.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의 두 바퀴를 힘껏 굴려 나무 사이를 씽씽 달렸다. 몸과 마음에 진득하게 붙어있던 우울이 달아났다. 버스를 타고 나가 사람을 만났고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가서 강좌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몸의 움직임들로 마음을 꽉 채운 불안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현실의 문제들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였는데도 조금씩 불안과 걱정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심하게 아프면 몸도 아프지만 반대로 몸이 일으켜지면 마음도 일어난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쩌면 마음도 몸처럼 팔도 있고 다리도 있고 머리도 있는 것 같다. 아니 몸의 구석구석에 마음이 들어있는데 그걸 모르고 몸 따로 마음 따로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오른손이 불편할 때 왼손을 연습시킨 것도 나의 마음이 시킨 일이다. 마음을 바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몸을 단련할 때처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이 불편하면 다른 마음 한 자락을 꺼내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다른 마음을 꺼내기 위해서는 몸도 같이 사용하는 방법이 좋다. 실을 앞에서 뒤로 보냈다가 다시 앞으로 보내는 박음질처럼 마음과 몸을 번갈아 사용하면 삶도 좀 더 견고하게 누벼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