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나물을 들고
잠
야근을 마치고 아침에 드는 잠은 버석하다. 얇은 비닐을 휘감은 잠이다. 깊게 자지 못한다. 겨우 두어 시간 만에 눈이 떠진다.
꿈
나쁜 꿈이었다. 안부가 궁금했던 사람이 꿈에 나왔다. 잘 지내냐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너무 바빠 보여 더 묻지 못하고 곁을 서성인다. 깨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의 얼굴을 모른다.
확진
세 여자 중 한 명이 드디어 확진이다. 전화 목소리가 걸걸하다. 조금 더 심하게 앓으면 임희숙 뺨치게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를 불러제낄 수 있을 것 같다.
반찬
나 먹자고 반찬을 사러 나섰다. 봄이라 나물 종류가 많아졌다. 아직 아침나절이라 여러 가지 전도 따뜻하다. 건너편 주방에서는 음식이 끓는 기척이 난다. 매운 생선조림 냄새다.
가지나물
가지 나물이 눈에 띈다. 확진자 그녀는 가지무침을 좋아하지. 가지를 푹 쪄서 죽죽 찢어 뜨거울 때 잘게 썬 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휘릭 양념 맛을 들인 후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깨소금 등등을 넣고 간을 맞춘 그런 가지무침을 좋아한다. 저건 가지를 썰어 기름에 볶은 나물인데. 그녀가 좋아하는 입맛 없을 때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되는, 어릴 때 엄마가 해주었다던 그런 가지무침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음식을 만들 기운은 없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 샀다.
꽃
그녀의 집으로 반찬 배달을 간다. 시속 30㎞의 스쿨 존을 지나고 병원을 지난다. 부릉 차의 속도를 높이려는 순간 길이 환하다. 주택가 커다란 나무들에 꽃이 터졌다. 벚꽃이 펑펑 터져있다. 붓에 잔뜩 스며있던 연분홍색 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린 것 같다. 목련꽃도 활짝 피었다. 날아오르려는 새의 날갯짓으로 금방이라도 나무를 끌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기억
작년 봄 이 길을 지나 그녀가 하던 카페에 갔었다. 오늘처럼 꽃이 만발한 날, 눈썹에 덜 깬 잠을 달고 갔었다. 어느 날은 꽃물처럼 고운 분홍색이 퍼지는 딸기 라테를 먹으러, 또 어느 날은 눈이 번쩍 떠지는 진짜 레몬을 짜서 넣은 레모네이드를 마시러, 정말 피곤한 날은 진한 냉커피를 들이켜러 갔었다.
추억
그녀는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다. 얼음을 절반으로 줄인 딸기 라테, 박하 잎을 짓이겨 넣은 레모네이드, 얼음 커피에 메뉴에 없는 꿀을 넣어달라는 주문도 들어주었다. 나는 친구가 내주는 음료를 흡족하게 마시면서 춘곤을 달랬었다.
길
그녀는 이제 이제는 카페를 하지 않는다. 겨우내 아프다가 힘들다가 그랬다. 지금은 확진자다. 나 먹을 반찬 사러 들린 가게에서 가지나물과 시래기 된장국을 사서 그녀에게 간다. 작년처럼 핀 벚꽃과 목련이 나를 불렀다. 작년처럼 이 길을 달려 그녀에게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