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단짠ㅡ울컥, 하하하 깔깔

ㅡ초복, 2021

by 최희정


초복이라고 해서 엄마 집에 갔었다. 마트에 들러서 삼계탕용 닭과 황기와 인삼은 구경만 하고, 복숭아를 사서 갔다. 복수박을 사서 가고 싶었지만 그건 없고 십 킬로가 넘는 수박만 있어서 복숭아를 사 갔다. 십 킬로가 넘는 커다란 수박은 지금 내 허리 상태로는 들 수가 없다. 닭은 누룽지통닭구이를 사 갔다. 철판에 마가린을 바르고 뜨겁게 달궈서 밥을 얇게 펴고 그 위에 구운 닭을 펼쳐 얹은 음식이다. 통닭을 몇 시간 동안 장작에 구워 기름이 쪽 빠지고 담백하다. 가슴살도 뻑뻑하지 않고 고소하다.


땀이 많은 엄마는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철 더위에는 땀을 줄줄줄줄 흘리신다. 겨울에도 난방이 잘되는 실내에 들어가면 금방 이마에 땀이 맺히신다. 그러니 이 복더위에 펄펄 끓인 음식은 드시고 싶지 않으신 거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도 찌개나 탕보다는 생채나 구이이다. 그런 엄마의 음식취향을 아니까 매년 복날이면 삼계탕이 아닌 구운 닭을 사다 드린다.


가보니 남동생이 와 있다. 삼계탕을 한 마리 사서 포장해 왔다. 점심 드신 지 얼마 안 지났다고 삼계탕 포장을 풀지도 않으셨다. 얼른 복숭아를 씻어 엄마 앞에 놓아드린다. '깎아서 엄마 아들 줘' 내 말에 칫 코웃음을 치시며 복숭아를 깎기 시작하신다. 그 옆에 앉아 구운 닭 상자를 펼쳐놓고 다리를 뜯어 하나는 엄마를 드리고 하나는 남동생을 줬다. 어릴 때는 동생 안 주고 내가 먹었다. 노릇한 누룽지도 조금씩 뜯어서 두 사람 접시에 놓아주었다. 엄마는 닭다리를 기어코 나를 주시고 날개를 드신다. 닭다리 하나씩을 아들자식과 딸자식을 먹이고 엄마는 살도 별로 없는 날개를 드신다. 난 바삭한 게 좋다 하시며 웃으며 드신다. 평상시에는 꼬랑지 털 하나도 안 보이는 아들과 딸이 세트로 왔으니 퍽퍽 가슴살도 살살 녹는다며 드실 것 같다.


동생아, 엄마가 지난번에는 육이오 때 먹은 보리밥 얘기하다 말고 울었다. 갑자기 눈 밑이 빨개지더니 울컥 목이 메셔서 말을 못 하시는 거야. 웃기지? 지난주에 물김치를 가지고 왔을 때 같이 밥 먹으면서 갑자기 육이오 때는 보리밥 먹었는데 이러시는 거야. 물김치 국물에 보리밥을 먹었어 그러시더니 눈물이 글썽글썽 해지시더라고. 내가 왜 쌀이 없었어라고 묻자 응 하면서 울먹이셨어.


내가 엄마 흉내를 내면서 얘기를 하자 엄마는 깔깔 웃으신다. 웃으시며 눈가가 또 빨개진다. 남동생이 '어린 나이에 보리밥 먹기가 싫었나 보지' 하니까 '응 보리밥 싫었어' 하시며 또 깔깔 웃으신다. 또 목소리가 젖는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우리 언니가 바느질 솜씨가 좋았는데 내 저고리는 안 만들어 줬단다' 하시면서 눈가에 눈물을 찍어내신다. 그러다가 쉰이 넘은 아들딸이랑 눈이 마주치자 푹 웃으신다. '아유 요즘엔 자꾸 말하면서 눈물이 나' 그러신다. 지난주에 이렇게 말하다가 눈이 빨개졌다가 픽 웃다가 하시던 모습이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 엄마의 울음주머니를 건드린다. 먼 곳에서 온 아들도 있고 그런 아들 복숭아도 깎아줘야 하고 아들딸 옆에 앉혀두고 바삭한 누룽지통닭도 드셔야 하니 찔러도 서럽게 터지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슬쩍 찔러본다. 찌르는 김에 더 쑥 찔러본다. '엄마 고생 많이 하셨지. 우리 정릉에서 이사 나와서 참기름 들기름 이런 거 대야에 이고 팔러 다니셨잖아. 그게 쉬운 일인가. 힘들지. 아휴 나라면 못했을 거야.' 엄마랑 나랑 서른한 살 차이가 나고 그때 내 나이가 대여섯 살이었으니 딱 오십 년 전이다. '울 엄마 마흔도 안된 서른몇 살의 나이에 고생 많이 하셨지.'


아, 딱 요기까지만 해야겠다. 마흔도 안된 서른몇 살이라는 말을 내가 해놓고 내 목울대가 뜨거워져서 더 못하겠다. '그다음엔 복숭아랑 포도도 그렇게 팔았어. 그때 복숭아 많이 먹었는데. 포도는 엄마 몰래 한 알씩 빼먹기도 했어. 하하하.' 남동생이 적당한 순간에 적당하게 웃으면서 추임새를 넣어주어서 우리 세 식구는 다 같이 깔깔 웃었다. 웃으면서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들도 돌아가고 딸도 가버린 집에 혼자 남아 티브이 드라마 재방송 보듯 살아온 시간을 되돌려 보실 때 70년 전 고생스러운 보리밥 생각에 눈가 벌겋게 붉어지시고 50년 전 발품 팔던 생각에 눈물 콕 찍으시다가 2021년 여름날 아들과 딸과 한 상에 앉아 복달임 닭을 뜯으며 눈물 삼키면서 하하하 깔깔 같이 웃었던 기억으로 맺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