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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r 07. 2022

사는 일은 흐르는 일

3월이 다시 흘러 왔다


이틀 전에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다. 낮에 맞고 대여섯 시간 지나고도 괜찮았다. 독감백신을 맞았을 때도 별 증상이 없었으니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밤 아홉 시 괜찮았다. 열 시에도 괜찮았다.


열한 시쯤 되자 갑자기 나른해지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열을 재보니 37.0  살짝 미열이 있었다. 해열제를 한 알 먹었다. 점점 더 일이 하기 싫어졌다. 열이 더 오르는 중인 것 같았다. 거기다가 어깨가 아파온다. 누가 내 날개쭉지를 꺾나 보다. 날개 자리가 너무 아파서 의자에 기댈 수가 없다.  없는 날개도 아픈 느낌이다. 꼬리가 있던 자리도 아프다. 꼬리를 잘라버리고 자연에서 도망쳐 지구별을 망치고 있는 벌을 받는 기분이다.


없는 날개쭉지를 움켜잡은 놈과 없는 꼬리를 돌려 잡은 놈이 뜻을 모아 내 몸뚱이를 흔드는 느낌이다. 한 놈 더 왔다. 이 놈은 안 보이는 이태리타월로 마른 내 살 거죽을 벅벅 민다. 아 살갗이 너무나 아프다. 근육통이 심해지더니  십 년 전 수술했던 디스크  자리가 이상하다. 으헉 다리 경련이 시작된다. 아마도 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나 보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몸이 자꾸 쳐진다. 찌리릿 찌릿 다리 경련이 점점 심해진다.  아아 환자들 옆에 나도 침대 하나 차지하고 눕고 싶다. 새벽에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세수도 못하고 진경제인 가바펜틴이라는 약만 먹고 그냥 누워버렸다.


 깨보니 오후 두 시. 그래도 약기운에 내쳐 여섯 시간을 잤다. 다행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도저히 출근을 못할 것 같아 병원에 연락을 했다. 다행히 대신 근무할 사람이 구해졌다. 다시 누웠다. 반복되는 다리 경련과 심해지는 근육통이 누우니 더 심해지는 기분이다. 일어나 냉장고를 뒤진다. 반숙란 사놓길 잘했네. 요플레도 사놓길 잘했어. 사과즙도 탄산수도 있으니 다행이야. 지금 몸이 더 가라앉으면 안 된다. 무조건 먹고 마신다.


머리가 자꾸 다그친다. 몸을 움직여, 몸을 움직여. 너 지금 혼자 방구석에 누워있으면 안 돼.  다 죽어가는 몰골로 친구 카페로 나왔더니  진짜 레몬을 꾹꾹 눌러짜서 레모네이드를 큰 컵으로 한가득 말아준다.  아는 언니에게 아프다고 징징대니  밥 사준다. 다슬기 토장국을 특으로 시켜서 후룩후룩 한 사발을 다 마셨다. 저녁에는 김포사는 언니가 전복죽을 끓여왔다. 코로나 시절이라고 들어오지도 않고 현관 앞에 죽통 놓고 쌱 뒤돌아 가버린다. 역시 우리 언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니 근육통이 사라졌다. 만세 만세 만세, 새 생명 얻었네. 그러나 요통은 남았네. 에구구 허리야. 그래도 살만하다. 살만하니 어제 카페 하는 친구가 요즘 치과에서 치료 중이라 먹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씹기가 힘들단다. 냉장고를 열고 바라보니 계란이랑 애호박이랑 두부가 저요, 저요, 저요 손을 든다. 허리에 복대를 하고 반찬을 만든다. 보들보들 푸딩처럼 계란찜을 하고 뭉근하게 애호박을 볶고 떠먹기 좋게 두부를 깍둑 썰어 냉이 강된장을 만들어 배달을 나선다.


어제는 언니들이 나를 먹여 살렸으니 오늘은 내가 친구를 먹여 보자. 사는 일은 이렇게 흐르는 일이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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