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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Feb 16. 2022

우리, 밥 먹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과정


우리 둘의 첫 만남에 대해 생각해보았지요. 도서관 건너편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작은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당신과 동향인 누군가와 셋이 만났지요. 나는 그때 당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조심스러워하고 있었지요. 처음이니 당연한 거지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했어도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 관계는 당신은 말하고 나는 들어주는 관계였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떤 날은 들어주는 일이 괜찮았고 어떤 날은 힘들었어요.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못 하고 듣기만 한 날은 힘들었어요. 그저 밥이나 먹으며 쉬고 싶었는데 많이 들어줘야 하는 날도 힘이 모자랐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듣기'라는 탁자는 그때그때 크기가 달라지나 봐요. 어느 날은 아주 큰 교자상이어서 당신이 어느 이야기를 얹어놓아도 다 담아줄 수 있을 만큼 넓게 펼쳐지지만 어느 날은 소반처럼 작아져서 마주 앉아 마시는 찻 잔 두 개 정도만 담을 수 있을 만큼 작아져요.


앞으로도 계속 내 마음의 크기는 변할 것 같아요. 나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으니까요. 너무 힘들고 지치면 상다리를 꼭 접고 벽에 기대 없는 척도 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힘들다고 당신과의 관계를 끊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들의 만남은 십 년이 넘었지요. 당신의 십 년과 나의 십 년이 수없이 많은 켜를 이루며 쌓여있지요. 이제는 한켜한켜 따로 분리해서 나눌 수 없어요. 나누려고 들면 너무 얇은 켜들은 망가져 부서져 버립니다. 당신과 나의 시간은 옷감의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있지요. 순탄하고 밋밋한 평직인 부분도 있고 도톰하고 예쁘게 무늬가 새겨진 부분도 있고요. 당신이 떠나거나 내가 돌아선다면 더 이상 우리들의 시간은 직조되지 못하고 시간의 배틀은 멈추게 됩니다.


나는 사랑이건 우정이건 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조심하던 뻣뻣한 시간을 지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해지는 시절이 오지요. 다정의 그림자는 서운함이라서 항상 다정할 수는 없어요. 당신에게 섭섭할 때 나는 당신이 내게 차려주었던 밥을 생각합니다. 쌀을 익히고 고기를 구워 차려준 진짜 밥을 생각합니다. 내 어머니에게 차려준 당신의 밥을 생각합니다. 당신도 내게 그런 밥을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무릎이 꺾이는 시간을 세워준 밥들입니다. 그때 그 밥의 힘이 없었더면 우리는 없을 겁니다. 나는 밥을 지어 먹여준 힘을 기억하는 것은 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의리가 부서지지 않게 사라지지 않게 다시 밥을 지어볼 생각입니다. 당신도 이 밥을 먹을 기운을 차리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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