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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Jun 27. 2022

멍게  좋아해요?

멍게젓갈 비빔밥

“멍게 좋아해요?”

“네, 아주 좋아해요. 멍게는 소주랑 먹어야 맛있어요. 일단 멍게를 한 점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고 꼭꼭 씹어 삼킨 후에 소주를 한 잔 드세요. 그러면요, 입 안에 남아있던 멍게 맛과 새로 들어온 소주의 맛이 엉큼 성큼 뒤섞이면서 들큰 비릿한 바다향은 후각을 자극하고 달큰쌉싸름한 맛은 목젖을 지나 식도로 넘어가거든요. 그게 아주 일품이지요.”


그날 멍게를 먹으면서 마치 술꾼인 양 너스레를 떨었다. 술은 소주 두어 잔밖에 마시지 못하지만, 멍게는 많이 먹을 자신이 있다. 그만큼 좋아한다. 멍게의 단맛은 어릴 때 알았다. 엄마가 그러셨다. 멍게를 먹고 물을 먹으면 입 안이 달아진다고.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멍게는 그렇게 먹었다. 커서 물처럼 투명한 소주라는 술을 먹어 보니 이것 또한 멍게의 맛을 돋아준다는 것을 알았다.


장마가 시작된 날 택배가 왔다. 5월에 말이 나온 멍게 젓갈이 6월 중순이 지나서 왔다. 비 시작하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숙성’에 한 달이 걸린다고 하였으니, 멍게라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입맛의 ‘원성’을 참고 기다렸다. 꽁꽁 묶인 비닐봉지를 풀어 열자 멍게 향이 확 퍼진다. 입 안에 침이 확 고인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으려던 마음을 바꾼다.


대접에 얼른 밥을 푸고 김을 잘게 잘라 얹고 멍게젓을 잘게 썰어 올린다. 멍게 비빔밥에는 상추나 쑥갓 같은 쓴맛이 도는 이파리들이 잘 어울리는 데 없다. 어쩔 수 없이 냉장에서 나오기 머쓱해하는 오이를 꺼내 채를 쳐 두른다. 참기름도 몇 방울, 깨도 부수어서 뿌린다.


기념 촬영을 해주고 숟가락으로 썩썩 비빈다. 빨리 먹고 싶어 손 떨린다. 크게 한 입 퍼서 먹는다. 공복의 분노를 없애는 무한한 맛이다. 맛이 비처럼 쑤와아아아 내린다. 멍게를 너무 잘게 다지면 씹히는 맛이 없어 재미없다. 밥알 사이로 멍게가 씹혀야 더 맛있다. 밥알이 입안에서 달고 부드러워질 때 소금간이 짭짜름한 멍게살이 아작아작 씹힌다. 맛이 폭우처럼 퍼부어진다.


‘비’라는 단어의 자음 비읍‘ㅂ’은 물이 반쯤 들어찬 동이처럼 생겼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울울 뿌려지던 빗방울이 가랑가랑 가랑비로 겅중거리더니 찰방찰방 비읍을 채운다. 말의 단지에 물이 들어찬다. 거세진 빗줄기는 주룩주룩 내린다. 이제 비는 동이에서 흘러넘친다. ‘비’라는 단어의 모음 ‘ㅣ’처럼 내려 꽂힌다. 바람이 부니까 삐딱하게 휜다. 우산 없이 비를 피하는 누군가의 급한 다리처럼 휜다.


비를 구경하면서 멍게 젓갈 비빔밥을 먹는다. 그야말로 ‘비멍’이다. 장마다. 올 장마는 비 냄새 섞인 멍게 향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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