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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06. 2022

어묵은 맛있고 국물은 따뜻해요. 어서 오셔요.

흐린 가을에 어깨가 옹기종기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어묵은 맛있고 국물은 따뜻하네요. 어서 오셔요.


날이 썰렁하다. 며칠 많은 비가 온 것도 모자라 다시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회색으로 내려 앉아있다. 흐리니 춥다.


이런 날씨에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국물을 후후 마시면서 꼬치 어묵을 먹고 싶다.


손수레를 넓게 펼쳐 판을 벌리고, 대를 세워 천막으로 지붕을 만들고 수레 안에 불을 넣고 커다란 솥을 얹어 국물을 낸다. 요즘은 어묵탕용으로 아주 커다랗고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네모난 용기가 나온다.


멸치며 다시마, 양파 등등 여러 가지 재료로 맛을 낸 국물이 펄펄 끓으면서 포장마차 안에 김이 자욱해진다. 포장을 빠져나온 뽀얀 김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쌀쌀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끈다.


포장 안에는 대 꼬치에 꿰인 어묵이 보인다. 넓적한 판 어묵을 구불구불 접에 꿴 것도 보이고 손가락보다 굵고 긴 어묵을 꿴 꼬치도 있다.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는 대나무로 만든 꼬치가 살살 사람들을 유혹한다. 차가운 가을 날씨에 사람들은 그 뻣뻣한 유혹에도 금방 꾀인다.


따뜻하고 익숙한 냄새에 사람들은 저절로 포장마차로 고개를 돌린다. 윗도리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바쁜 걸음으로 총총 걷던 장년 사내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팔짱을 끼고 서로만 쳐다보고 걷던 젊은 남자와 여자도 어느새 포장마차 안으로 시선을 같이 한다. 엄마 손을 잡고 걷던 어린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어묵꼬치를 가리킨다.


주인아주머니는 바쁘게 손님을 받고 손님들은 어깨를 가까이한 채 나란히 서서 대 꼬치에 꿰인 어묵을 먹는다.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국물을 후후 불어 후룩후룩 들이마신다. 서로 눈인사도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꼬치처럼 나란히 나란히 서서 흐린 가을 시린 속을 달랜다.


포장마차에서 번져 나온 노란 불빛이 사람들의 그림자를 옆으로 길게 소곤소곤 속닥속닥 이어 붙이고 있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오면서 어둠이 진해지듯이 포장 안에서 오래 끓은 어묵 국물도 밤처럼 진하고 뜨거워지고 있다. 깊고 뜨거운 꼬치 어묵의 밤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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