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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13. 2022

아빠의 계란 프라이 밥

서니 사이드 업, 굿모닝!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아니 몇 가지 음식들을 마주하면 아빠가 떠오른다. 내가 그렇든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보면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과 얽힌 사연을 떠올린다.


나는 갓 지은 쌀밥을 보면 아빠가 생각난다. 어릴 때 살던 정릉 집에 큰언니와 작은 언니와 내가 밥상에 앉아있다. 우리 세 자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있다. 아빠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그것을 감싸고 있던 반투명의 종이를 벗겨내신다. 하얗고 네모난 그것은 '빠다'다. 아빠가 언니들 밥그릇과 내 밥그릇에 빠다를 한 숟갈씩 퍼서 얹어주신다. 


다섯 살의 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언니들 밥 위에 빠다가 사르르 녹는 것을 지켜본다. 드디어 내 밥 위에도 빠다가 놓이고 하얀 덩어리가 뜨거운 밥에 의해 노랗게 녹으면서 밥알 사이로 스밀 때 살짝살짝 고소한 냄새를 풍기면 나는 오른손에 숟가락을 꼭 쥐고서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나의 젊은 아빠가 '빠다'라고 발음했던 그것은 '마가린'이다. 나는 쉰이 넘은 지금도 밥을 새로 하고 밥통 뚜껑을 열었을 때 보름달처럼 환하고 둥근 밥이 둥실 나타나면 '빠다밥'을 해 먹어보고 싶어 진다.


이제 서른 살을 향해가는 내 딸아이는 계란 프라이를 보면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한다. 아이가 어릴 때 외갓집에 놀려가면 아빠는 손수 계란 프라이를 해주셨다. 


아이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할아버지가 계란 프라이 해줄게. 밥 먹자.' 하시면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는 프라이팬을 얹으셨다.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지면 계란 하나를 들어 껍질을 톡 깨뜨려 넣고서 프라이를 하셨다. 공기에 밥을 적당히 푸고 그것을 얹으셨다. 밥을 비비기 좋게 노른자를 덜 익힌 계란 프라이가 봉긋한 밥 위에 놓인 모습은 맑은 날 이른 아침 떠오르고 있는 동그란 해를 닮았다. 아빠는 계란 프라이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뿌려 맛나게 비벼주셨다. 


아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할아버지가 계란 프라이를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밥 위에 동글 떠있는 노란 해에 참기름이 한 방울 똑 떨어지면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면 딸은 어린 날의 나처럼 오른손에 숟가락을 꼭 쥐고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이차가 크다. 큰 애와 작은 애가 무려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아들인 작은 애는 할아버지의 계란 프라이를 모른다.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몇 년 동안은 아프셔서 부엌에 서서 손자에게 음식을 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 녀석도 계란 프라이에 참기름과 간장을 넣고 비빈 밥을 좋아한다. 특히 새로 밥을 하면 특히 더 그렇다. 밥이 뜸이 들면서 달큼한 밥 냄새가 퍼지면 아이는 방에 있다가도 '아, 오늘은 계란 프라이 밥이 먹고 싶네.' 하면서 방에서 나온다. 심지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집에 오자마자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이기도 했다. 


아들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가끔 아들에게도 계란 프라이를 해서 밥을 비벼주었기 때문이다. 내 아빠가 내 딸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노른자를 덜 익혀서 밥 위에 얹고 참기름과 간장 몇 방울을 조심스럽게 똑똑 떨궈 주곤 했다. 스무 살이 넘는 아들은 이제 스스로 계란 프라이를 해서 밥을 비벼 먹는다. 계란을 들고 프라이팬 앞에 서 있는 아들 모습에서 나는 이미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의 뒷모습을 본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고생을 많이 한 아빠는 자식들에게 엄하고 무뚝뚝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아빠에게 야단도 많이 맞고 자랐다. 그런 아빠가 싫어서 사춘기 때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하지만 손자들에게는 웃음을 아끼지 않으셨다. 차려진 밥상을 받으시는 분이 손수 주방에 서서 계란을 익혀 밥을 먹이실 정도로 다정한 면을 보이셨다. 그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할아버지 앞에서 눈을 빛내며 입맛을 다시던 어린 손녀딸과 그 손녀딸이 오물오물 밥을 받아먹는 입을 보며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웃으시던 내 아빠의 모습이 '서니 사이드 업'이 되어서 가을 아침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마음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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