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Apr 08. 2022

달의 뒷면

눈이 떠졌다. 새벽 네 시다. 어두운 방 안에 빛이 스며있다. 덮고 있던 이불이 내 몸 곡선에 따라 구겨진 것이 보인다. 이불에 그려진 모란꽃도 어슴프레 보인다. ​선명하게 색을 들어내지 못하는 밤의 사물들에게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 빛. 달빛이다. 달빛은 어둠과 맞서지 않는다. 창을 여니 보름달이 보인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밖으로 나선다. 조용히 현관문을 연다. 아파트 복도에 달빛이 가득하다. 달은 오랫동안 곧게 자란 나무들에게 긴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다. 건물에 빗살무늬가 새겨진다. 생긴 지 30 년이 되었으니 나무도 30 년동안 달빛을 묻혀 벽에 무늬를 찍었겠다. 해가 갈수록 나무가 자라고 무늬는 점점 길어졌겠다.



​'죽기 전에 우주여행을 하고 싶어요. 달의 뒷면을 보고 싶어요.'


​매운탕을 앞에 놓고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그가 말한다. 둥그런 공 모양인 달이 앞면, 뒷면이 따로 있지는 않다. 지구에서 인간이 보는 달은 항상 같은 면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쪽을 앞면이라 부르고 보이지 않는 쪽을 뒷면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달의 뒷면은 평생 볼 수 없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면서 스스로 돌듯이 달도 지구처럼 공전을 하면서 자전도 한다. 달의 지구 공전 주기와 지구의 자전주기가 일치하여 지구에서는 달의 한쪽 면만 보인다. 달의 뒷면을 보려면 지구를 벗어나야 가능하다. 그는 달의 뒷면을 보려고 돈을 모은단다.​



'젊어서 크게 다친 일이 있었어요. 그 일로 하반신 마비가 왔죠.'


2년간 누워 있다가 오랜 재활치료 끝에 앉을 수 있고 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겪었던, 머리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감각하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얘기한다. 발목에 힘을 주고 발바닥을 종아리와 90도 각도로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침대에 축 늘어져 있던 발에 대해, 혼자 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양팔에 힘을 주었으나 휠체어에서 떨어지지 않던 엉덩이에 대해.



'여기 이 매운탕 냄비가 지구라면 달은 이렇게, 이렇게 지구를 도는 거죠.'


절인 고추가 담긴 반찬 접시를 들고 달의 공전을 설명한다. 우주에 있지만 우주가 모르는 지구라는 별, 그 별 어느 대륙 끝에 붙은 작은 나라, 그 나라에 있는 파주라는 곳, 파주 안의 두지리, 두지리 안의 작은 매운탕집 테이블이 순식간에 우주로 변한다.



새벽달을 본다. 달은 반찬이 담긴 하얗고 둥근 접시로 변한다. 삶의 가장 끝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이 죽기 전에 달의 뒷면을 보고 싶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봄 여름 가을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