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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y 13. 2022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오랜만이야 어디 갈까? 뭐 먹을까?

어제는 삼 년 만에 만난 친구랑 산 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소소하게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냈어? 무릎은 괜찮아?

마지막 만났을 때 무릎이 아파서 어떤 때는 걷는 것도 힘들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하던 치료를 멈추고 오히려 몸이 좋아졌단다. 다행이다.


-3월, 그때 마음이 어땠니?

웃음 끝에 친구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했지만 묻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고, 조금이나마 배웠던 심리학의 상실의 단계까지 되새기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딱 그 상실의 단계에서 말하는 6개월 무렵이 정말 힘들었다고 마치 교재에 나오는 사례의 일부분을 이야기하듯이 간결하게 내 경험을 전해주었다. 생니를 뽑은 것처럼 오금까지 쑤시고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어.

내가 묻지 않았지만 친구는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맥이 쑥 빠져서 긴 이야기를 풀어내던 친구의 눈가가 젖는다. 나는 그저 듣는다. 그런 사람들 많아,  나이 들면 괜찮아져 등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인자한 표정으로 달관한 태도로 내게 이런 말들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충고랍시고 말을 했지만 그 말들은 가시덩굴이 되어 나를 할퀴었었다. 예전의 그 기억이 떠올라 그저 들었다.

 

-여름 되기 전에 다시 보자.

저녁이 다가오자 친구는 다른 약속이 있다고 서둘러 떠났다. 아마도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약속인 듯했다. 그녀가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무심한 듯 토닥여주었다. 나는 친구에게 조만간 꼭 다시 보자고 했다. 진심이었다.


 

J에게

 

오늘 너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8년 전 너와 함께 했던 여행이 생각났어. ‘어디든 여행을 가고 싶어.’ ‘그래 가자.’ 몸도 마음을 따라 황폐했던 그때 내가 무심히 내뱉은 한 마디에 너는 주저 없이 차를 몰고 와 나를 강원도로 데려다주었지. 같이 바다를 보고 물회를 먹었지. 바닷가에 놓여있던 횟집 평상에 느른하게 누워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았었지. 그리고 산길을 같이 걸어주었지. 그때 참 고마웠어. 텅텅 비어있던 내 마음의 그릇에 너의 마음을 나누어 채워준 일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그 해 여름을 견뎠다.

 

J야

그때의 나처럼 마음의 고통에 빠져있는 너에게 내가 같이 여행을 가줄 수는 없지만 잘 버티라고 잘 견디라고 응원을 해주고 싶어. 어제 너에게 직접 이렇게 말하지는 못했어. 조금만 몸부림을 쳐도 발목이 더 쑥쑥 빠지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낼 때는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되지가 않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마음의 물기가 빠지면 몸도 팍팍해지더라. 마음의 온기가 사라지면 몸도 뻣뻣해지더라. 마음에만 온통 신경을 쓰면 결국 몸이 아프게 되더라. 몸이 아프게 되면 마음은 쉽게 무너져.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몸까지 상하지 않길.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일단 생각을 딱 멈춰봐. 지금 네 앞에 닥친 일은 오늘 한두 시간 생각을 멈춘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아. 어제 우리 점심 먹고 잠깐 걸으면서 나무 사진을 찍었었지. 그렇게 생각을 멈추고 잠깐 걸어. 생각을 멈추고 잠시 나무를 봐. 사진도 찍고 해 봐.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니 나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만 찍었고 너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어울려있는 모습을 찍었더라. 네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너는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5월에 여행을 간다고 했지? 배낭에 걱정은 싸들고 가지 마. 걱정을 짊어지고 다니면 어깨가 너무 아프잖아. 너 무릎도 안 좋은데 어깨까지 아프면 그게 여행이겠냐 고난의 순례길이지. 그냥 편한 운동화 신고 돈이랑 카드만 딱 들고 가. 아참 핸드폰도 들고 가서 맛있는 거 먹을 때 사진 찍어서 보내라, 부러워해 줄게, 좋은 풍경도 찍어서 보내, 너의 염장질에 배 아파해 줄게.

 

결국은 또 이렇게 실없는 농담을 한 마디 던지네. 농담의 배후에는 너를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지? 마음의 고통으로 인해 몸까지 상하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을 수시로 네게 보내줄게. 건강 챙기면서 잘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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