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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y 10. 2022

복채(卜債)를 받고 복(福)을 주세요.

    

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어공주처럼 큰 눈을 가졌다. 항상 명랑하고 잘 웃는다. 누구에게나 미소를 띠고 상냥하게 대한다. 삼십 대 초반으로 다정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아가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을 갖고 있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 꿈‘인 삼십 대 여성이라니, 그녀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이에 맞지 않게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화처럼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깨지고 가족도 분열되었던 사춘기를 겪었다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나서는 그런 꿈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 어제 사주 보러 갔었어요.”

그날도 류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웃음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주요? “

”그런데요.... “     


그러더니 그녀의 큰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가가 빨개질 틈도 없이 울음으로 얼굴이 일그러질 틈도 없이 눈물이 그녀의 온 얼굴을 덮었다. 사주쟁이가 그랬단다. 당신은 도화살이 있다고. 그런데 그게 너무 센 것이라서 정상적인 결혼은 어렵다고 했단다. 옛날 같으면 기생이나 첩의 팔자라고 했단다. 그러니 일반적인 결혼은 생각하지 말고 돈 많은 남자의 세컨드 자리를 생각해보라고 했단다.    

  

”아 미친, 그 작자, 놈이에요? 년이에요? 내가 욕 좀 해줄게요. 뭐 그따위 인간이 다 있어? “     

이럴 때 내 손주 새끼 흉보는 놈에게 시골 할매가 하듯 욕이 방언처럼 시원하게 터져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답답했다. 그저 허둥지둥 휴지를 찾아 류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등을 쓸어주었다. 마냥 엉엉 다리 뻗고 울 수는 없는 장소라서 류도 자신을 다독여 울음을 그쳤다.      


"자자 이거 달콤한 바닐라 라테, 이거 마시면서 그 미친 작자의 막말은 잊어요."

나는 후다닥 일어나서 뜨겁고 달콤한 커피를 사 와서 류에게 주었다. 어린아이들이 으앙으앙 큰 소리로 서럽게 울 때 물 한 모금을 입에 축여주면 울음이 잦아든다. 류의 마음에 남아있는 울음도 그렇게 멈추게 해주고 싶어서 커피를 사 왔다. 커피를 받아 드는 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진정시키고 앉아 다시 붓을 잡는 내 손도 떨렸다. 욕 같지 않은 욕을 하면서 물감을 묻힌 붓에 힘을 줘서 종이를 벅벅 칠해대는 나를 보더니 그녀가 배시시 웃는다.      


"웃지 마요. 다음부터 나쁜 말을 하는 인간들에게는 웃어주지 마요. 복채도 주지 말고 상을 걷어차고 나오지 그랬어요. 그런 것도 바로 되는 게 아니니까 거울보고 연습하세요. 자 미간에 힘을 빡 주고 팔짱을 끼고 뭐라고요? 지금 나한테 무슨 악담을 하는 거죠? 이렇게. 목소리도 톤을 낮춰서 엄숙하게. 발음도 한 단어 한 음절 딱딱 끊어서. 두 눈은 그런 작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요. 어때요? 나 잘하죠?"

   

류가 날 보면서 하하하 웃는다. 아마 그녀는 이렇게 못 할 거다. 나도 막상 실전에 닥치면 못한다. 그저 길 가다 쏟아진 구정물 세례처럼 갑자기 끼얹어진 악담에 젖어 속상해하는 류를 달래주기 위해 어설픈 연기를 해보는 거다. 그 사주쟁이가 멍청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결혼할 팔자는 아니니 좀 더 기다리면 괜찮은 사람 나타난다는 등의 우회적인 표현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여자들도 자기 일 하면서 늦게 결혼하니 천천히 기다려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분명 그는 류에게 사주가 이렇고 저렇고 아는 척을 해가면서 도화살이라는 말을 했을 거다. 이 단어는 결혼이 궁금하여 복채 들고 찾아간 삼십 대 여성에게 할 말은 아니다. 마치 환자 면전에 대고 당신은 이제 6개월밖에 못 삽니다.라고 말하는 매정한 의사와 무엇이 다른가. 아니 그런 의사보다 더 나쁘다. 의사는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을 하지만 사주는 그렇지 않다. 또 풀이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경우가 꽤 많다. 정말 안 좋은 운명이 보인다 해도 행운을 바라며 찾아온 고객에게 당신은 당신이 바라는 행운은 없다고 할 필요는 없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도 있다. 전국의 사주 본다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고객들에게 당신들이 아는 지식 자랑을 하지 말라. 손님들은 당신이 얼마나 사주풀이를 잘 배웠는지 알고 싶은 게 아니다. 말로나마 희망을 얻고 싶은 것이다. 내 돈을 주고서라도 위로가 되는 말을 듣고 싶은 거다. 그러니 어떻게 말하면 위로가 될 수 있을까를 잘 ‘공부’해서 말하길 바란다. 그게 당신들이 덕을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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