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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May 24. 2022

마음의 그릇

마음의 그릇에는 그때그때 담길 수 있는 게 다른 것 같아. 오늘처럼 허기지고 피곤한 날에는 그저 싱싱한 야채에 밥을 얹고 우렁 강된장도 얹고 우물우물 꿀꺽 밥을 담고 싶었던 거지.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가늘게 채를 썰어 딱 알맞게 볶은 무나물이랑 매콤 짜르르한 갈치속젓을 감탄해 가면서 편안하게 뱃속을 채우면서 스르륵 마음속 덩어리들을 비우고 싶었던 거야.

그러니까 오늘 내 마음의 양푼에는 이미 피곤 한 덩어리랑 허기 한 덩어리가 들어있었던 거야. 그러니 긴장된 하소연이 들어올 자리가 별로 없었던 거야. 일단 허기를 치우고 피곤을 치우면 빈자리가 생기겠지. 아마도 그 자리가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가 되겠지. 당신의 이야기 자리.


전에는 왜 충분히 들어주지 못할까 고민했었어. 분명 내게 들어달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어느 때는 같이 이야기에 스며들면서 듣게 되고 어느 때는 듣는 게 힘들까 생각해보았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마음에 담는 일이더라고. 그러니 내 마음의 그릇이 무언가로 복닥복닥 가득 차 있을 때는 들어주기가 힘들었던 거지.


나도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했는데 이야기가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듣는 이가 내 이야기 외의 것들로 마음이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내 얘기를 담아주지 않는 것. 이게 섭섭하더라고. 속상하더라고. 어떤 때는 쓸쓸해지기까지 했지. 하지만 네 맘 내 맘 바꿔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 사람은 나를 담고 품을 틈이 없었던 것 같아.


누구든지 빚어놓은 마음의 그릇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이것저것 너무 많이 담기면 흘러넘치거나 쏟아져내리겠지. 흘러넘치면 얼룩이 생기고 쏟아져내리며 부서져 버려. 그러니 마음의 그릇에 마음을 담을 때에는 살펴보는 눈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똑똑똑, 지금 여기 당신의 마음에 빈자리가 있나요?  


제가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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