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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ker 한영 Jan 01. 2022

우리 시대에 맞는 정조 관념은?

73. 5R 9일차_9th: <순창편> 6. 홀어머니 산성

6. 홀어머니 산성


백제시대 석축산성의 특이한 이름

   순창 고추장마을을 나와 백산 교차로를 지나니 옆으로 강천산에서 발원해 순창읍을 관통해 흐르는 경천이 보인다. 분지 지형에 발원지가 가까워서인지 하천 물이 더 맑은 것 같다. 산수 좋은 시골길을 걸을 때는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그런데 하천 건너편에 경천이 돌아 흐르는 앞쪽에 삼각형으로 앙증맞은(해발 90m) 자그마한 산이 하나 보인다. 저 작은 산에 산성이 있다는데 이름도 특이한 홀어머니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대모(大母)산성으로 소개돼 있는데, 석축산성으로 둘레가 780자이며, 높이가 26 자라고 기록돼 있다. 가장 오래된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백제 시대 도실현의 주성이었고 고려와 조선 초에 걸쳐 군창으로 사용됐던 성으로 전해온다. 이렇게 오랜 기간 역할해 온 산성에 무슨 연유로 이 같은 특별한 이름이 붙었을까.


정조란 무엇일까?

   전설에 의하면 한 옛날 양씨부인이 살았는데 설씨라는 총각이 혼인할 것을 요구하자 부인은 "내가 이 산에 성을 쌓는 동안 총각이 나막신을 신고 서울에 다녀올 때까지 만약 내가 성을 다 쌓지 못하면 혼인하겠다"고 하였다. 부인이 마지막 성돌을 채 올리기 전에 총각이 돌아오자, 돌을 나르던 치마를 뒤집어쓰고 성벽 위에서 몸을 날려 자결하여 정절을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 지금도 시집가는 신부의 신행길은 이곳을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성적 유혹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있다. 전설의 양씨부인은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된 여성으로 보인다. 사실 혼자된 여성에게 정조를 강조하거나 칭송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정조는 정한 사람이나  남편이 있을 때를 전제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도 상대가 재혼하지 않기를 바라거나, 자녀들이 부모의 재혼을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상대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 욕심일 수 있다. 정조가 자기 결정권이나 성적 자유와 연결되는 개념인 이유이다. 성적 순결을 남이 강간 등으로 침해할 수 없고, 정조를 강제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홀어머니 산성의 전설에 비추어 보면, 양씨부인의 결정이 철저히 자기의 결정이었다면  안타까워도 사회적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조장하거나 외부의 압박을 느낀 결과라면 문제일 수 있다.


여성에게만 요구됐던 정조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정조가 오랜 기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돼 왔다는 점이다. 이는 정착농경(定着農耕)이 발달하고 부권사회가 성립되면서 남자 지배와 부계상속제 하에서 상속인이 될 자식을 낳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고, 자기 혈족의 정통성이 중요한 만큼 그를 담보할 여성의 정조도 같이 중요해진 때문이다.

   이 같은 여성에 대한 정조 개념은 그리스 ·로마 등 고대 문명사회에서도 볼 수 있고, 중세에도 유지되었다. 우리나라도 여성의 종속적 개념이 강했던 조선시대에 더욱 강화되어 개화기를 거쳐 60~70년대까지도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정조 개념이 유지되었다.


서로의 사랑을 지키는 도리

   경제 주체로서 여권의 신장, 피임 기구의 발달 등으로 여성의 정조 개념은 점차 약화되었고, 지금은 성평등이 정착되면서 남녀 쌍방이 동시에 지켜야 할 성적 순결 정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사귀는 동안, 그리고 부부로 사는 동안 서로 같이 지켜야 할 의무인 것이다.

   내 생각엔 자연스러운 이치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다. 성적 관심이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향하는 것은 인간의 생체 원리 상 당연한 것이다. 오늘 같은 성적 자유나 자기 결정권이 고양된 시대에 있어 법적 장치나 사회적 구속력이 없이도 사랑하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사랑과 가족을 위해 서로의 정조를 스스로 지켜나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이치에 맞는 것이다.


때로는 인디아나 존스가 되기도

   경천이 이 홀어머니 산성을 돌아 흐르고 있다. 백산교를 건너 경천 옆의 제방길을 따라 홀어머니 산성으로 향한다. 산기슭은 벼랑으로 경천에 직하하며 길을 막아서고 있다. 우리는 국토 순례자인 동시에 사람길을 찾아 나선 탐험가를 자처하므로 이런 상황에 익숙하고 오랜 걷기로 단련돼 있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길 없는 숲을 뚫고 산을 오른다.

   조금 오르니 반갑게도 산속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의 작은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이번엔 친절하게도 우거진 숲 사이로 데크 다리가 나타난다.

   가끔 이렇게 인디아나 존스나 타잔의 마음이 돼 보는 것도 사람길 국토종주만이 주는 매력이다. 홀어머니 산성 앞 대모암으로 오르는 포장길을 만나 바로 앞의 경천을 건너 홀어머니 산성을 나온다.


숲속 다리를 건너고(좌), 경천을 건너 홀어미니 산성을 나온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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