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정암루, 정암철교ㆍ탐방일: 2022. 12. 11
그날의 비장한 결기와 함성이 들려오는 듯
의병광장 옆엔 남강 절벽 위에 우뚝 선 정암루와 그 앞 푸른 남강을 가로지르는 정암철교가 나란히 보인다.
정암루에 오르니 유유한 남강과 강안의 절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지금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풍광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곳이 바로 내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웠던 의병들의 혼이 서린 정암진이다.
통영 미륵도의 미륵산 전망대에서 한산대첩 승첩지인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며 당시의 의로운 싸움을 상상으로 그려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이곳 정암루에 서니 그날의 의병들의 비장한 결기와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선조들은 열세에서도 내 고장, 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중과부적의 적과 맞서 싸웠다. 선조들이 지켜낸 우리의 이 수려한 강산은 '꺾이지 않는 정신'의 고귀한 산물이다.
국토를 지켜낸 강인한 정신 상징하는 누각
정암루가 있는 이곳은 원래 조선 전기 때 지은 취원루가 있던 절경지였는데 화재로 소실된 자리였다.
1935년 이 고장 유림과 유지들이 임진왜란 승첩지인 이곳을 기리는 뜻으로 취원루가 있던 자리에 정암루를 건립했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63년 군민의 성금으로 재건해 오늘에 이른다.
빼어난 경치로 태평시대엔 학문을 논하고 풍월을 읊던 장소에서 나라의 위기를 막은 의로운 싸움을 기리는 장소로 탈바꿈되므로 시대에 적응하고 역경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역사와 국토를 지켜낸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는 누각이 되고 있다.
큰 역할 하며 상처를 메우고 서 있는 모습 감동
정암루 바로 오른쪽 밑으로 유려한 정암철교가 남강을 건너 뻗어있다.
정암철교(폭 6m, 길이 약 260m) 역시 1935년 준공되었다가 한국전쟁으로 일부가 파괴돼 1958년 재건되었다.
신축 땐 5개의 경간(다리와 다리 사이) 상부 모두가 철골트러스 구조였는데 한국전쟁을 거치며 두 개의 경간만 남게 되자 1958년 재건하면서 남아 있던 부분만 원래의 철골트러스를 설치하고, 파괴된 부분은 새로운 철근콘크리트 T형 거더교로 건설했다. 두 개의 다른 구조가 합해진 특이한 다리가 된 것이다.
아니, 특별한 다리라고 해야겠다. 교통의 요충지 정암나루를 대신해 역할했고, 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안은 모습으로 다리 한쪽을 잘라내고 새 다리로 접합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정암철교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이 다리가 1935년에 태어났으니, 자식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혼신을 다해 사시다가 온 몸이 무너져 내린 우리 부모님들의 성스러운 모습을 닮아 있다.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
정암철교의 원래 이름은 '정암교'로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완공되기 전까지 부산·경남에서 전라도로 가는 주요 길목에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한 다리이다. 1988년 말, 부근에 정암교가 새로 건설된 후부터 임무를 정암교에 넘기고, 2007년부터는 차량통행이 완전 금지되고 보행자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는 다리가 되었다.
정암철교는 오랫동안 서부 경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과 보존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2014년 10월 30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암철교 위에서 본 순결한 우리의 산하
천천히 다리를 걸어본다. 초입에 옛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쟁의 상처를 메우고 재건한 당시의 축하 인파가 다리와 산, 정암루 지대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룬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정암교는 절실한 다리였다.
푸르다 못해 시린 남강이 밑으로 유유히 흐르고 강물 위로 하늘마저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르다.
이 순결한 산하를 우리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피를 흘리셨나 보다. 선조들이 지켜낸 우리의 산하가 지금 내게 한없는 평안함과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