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시간이 흘러간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흘러가는 세월에 덧없어하고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모두 참 열심히 사는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기억나는 것도 없다.
"그동안 무얼 하며 왜 살았지?"
이 질문의 근저엔 정작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일(돈벌이)에 쫓기듯 산 아쉬움이 배어 있다. 그렇게 사는 동안 남은 건 늙은 몸뿐이다.
우리 삶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노화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흘러간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은행에 돈을 저축하듯 시간을 축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모재적 삶
인간은 소모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산업사회는 인간을 소모재로 만들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듯이 인간의 가치조차 능력만큼 돈으로 평가받는 소모재가 되었다. 인간은 그 돈으로 소비하고, 소비로 얻은 소유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 또한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소비되는 존재로 살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도 남는 것이 없다. 젊음을 다 바쳐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늙으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재산을 무덤에 가져갈 수도 없고, 건강도 남지 않았고, 기억할 추억도, 감탄했던 경치도, 새로운 느낌도 없이 세월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할 일 없고 늙어서 여행을 떠나보려 하지만 이젠 감성이 메마르고 몸은 힘이 없고 정신은 허해서 좀처럼 동기가 유발되지 않는다. 결국 여행도 못 떠나고 건강은 날로 쇠약해져서 인생무상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런 사람에게 세월은 더 덧없고 시간은 더 빠르다.
시간의 축적
나는 지난 8년 간 걷기 하면서 '시간의 축적'이라는 새로운 명제를 생각하게 됐다. 걷기 했던 시간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걷기를 싫어했던 사람이다. 걷기 하는 시간을 아까워했다. 만약 10분이면 차로 갈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어가야 한다면 몇 배의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걷기가 내게 얼마나 큰 만족감과 기쁨을 주는지를 몰랐다. 걷기가 내게 힐링을 주고 건강을 준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걷기를 시작한 이후로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왜 걷기가 만족감을 주는지, 몸과 정신의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인간의 사고의 범위와 관점은 어떻게 확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지, 추억이란 것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간이 건강한 삶을 사는 본령이 무엇인지와 같은 명제들을 걷기를 통해 실증할 수 있었다. 걷기가 건강으로, 힐링으로, 추억으로, 이 모든게 합해져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걷기 한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걷기 한 한 시간도 아깝지 않게 고스란히 내 안에 축적되었다는 사실을. 시간이 마치 생명을 얻은 듯 걷기는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가 살아있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걷기는 시간을 축적해 주는 보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