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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길

<사람길 걷기 인문학 프롤로그> 정신과 육체의 합목적으로서 걷기 탐구

by Hiker 나한영

이상을 먹던 학창시절


난 정신의 고매함을 믿었다. 정신력은 그 무엇보다 상위의 가치체계를 지배하는 능력이다.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분별하고,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삶을 이끄는 의지의 그 모든 것이 정신의 힘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도 완벽한 정신적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 내 첫사랑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었다. 그 이후 정신만으로도 100%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상과 꿈에 젖어있던 학창시절,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던 내 절친과 사랑에 있어 정신과 육체에 관해 논쟁한 일이 있다. 난 정신만으로 완벽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육체가 끼어들면 불순해지는 것인 마냥 했다. 또 난 정신의 의지로 나쁜 일을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사창가 사람이 되는 것은 본인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라는 취지였다. 모든 결과는 철저히 본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사랑은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될 때 완벽해질 수 있다고 했다. 사창가 사람에 대해서도 달리 말했다. 네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다면 너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친구의 생각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병에 걸리면 정신도 약해지듯이, 육체와 정신은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연동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완벽한 이성적 선택도 불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에 지배받고, 생각도 시대와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가까이는 가족, 친구, 애인, 지인, 사업 파트너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그 이후 자신이 감정적으로 끌리고 선택한 것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서 이성이나 논리가 활용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오히려 이성은 인간의 감성보다 힘없는 나약한 존재일 수 있다. 완벽한 이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성과 실존에 대한 변증의 역사


18세기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과학적 법칙 탐구에 매진하고, 이성에 의한 역사적 진보를 신념화하던 계몽주의 시대에 칸트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거부하고 계몽주의에 도전장을 던진 '순수이성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벽한 계몽주의로 가는 방법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즉 이성이라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이성을 분석하고 따져보고 비판하므로 계몽이 지속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결국 칸트 철학은 시대의 산물이었고 시대를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리고 100년이 더 흐른 20세기에 와서야 이성을 기반하는 합리주의나 실증주의를 반대하고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 시대가 열렸다. 19세기 키에르케고르에서 싹트고, 19세기 후반 니체를 거쳐 20세기 하이데거, 사르트르로 이어진 실존주의는 법칙이나 본질보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에 집중한다.


존재를 인식하고 선택하는 것도 각 사람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인간에게서 중요한 것은 현실 존재, 실존이지 이성이라든가 보편적 본질이 아니라는 이 같은 생각은 실존적 현상학에 집중하게 하므로 인간의 삶의 현상에 대한 탐구, 실존적 자유, 자기의 신체나 타자의 존재와 같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열어제끼게 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만법의 유무가 마음에 달려 있고 만법이 마음에 의지하여 성립한다는 三界唯心 萬法有識(삼계유심 만법유식)을 설파한 신라의 원효에게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에 대한 실존주의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원효에게서도 보이는 현실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의 주체적 결단의 중요성은 각자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통해 불교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원효는 본체가 없는 물건에 의존하는 헛된 비교, 구분, 차별로 망상과 고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내 인식의 한계와 오류를 깨우쳐 주므로 나를 찾는 깨달음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길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것, 우리의 이성, 그리고 형이하학적이고 육체적인 것, 우리의 실존, 이 둘은 인류 역사 이래 이쪽과 저쪽으로 비중을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인간 존재와 세상의 현상에 대해 의문을 던져 왔다. 그러나 둘은 언제나 같이 있어왔다.


삶은 정신 만으로도 안 되고, 육체 만으로도 안 된다. 좋은 삶,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어느것 하나 소홀할 수 없고 둘을 같이 단련할 수 있어야 한다.


걷기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 우리의 신체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있다. 나는 걷기를 시작한 이후 걸으면서 그 사실을 체감했다.


이제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되는 지점으로서 걷기를 논하고자 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걷기 자체가 아닌 인간에게 집중해서, 인간이 걷기를 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걷기가 우리의 육체와 정신과 어떻게 연관을 갖고 있고, 육체와 정신을 어떻게 발달시키는지, 걷기가 어떻게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인도하는지를 사람길 걷기 행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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