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초급/골목길. 생태길.
적적할 때 부암동을 걸으면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과 더불어 감각적인 공간으로 주목받는 핫플레이스이면서, 아늑하고 분위기 있고 풍광 좋은 이곳만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원래 이곳은 예부터 '자문밖' 동네로 풍광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하던 곳이었다. 천혜의 자연 지형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카페와 갤러리, 상점, 문화 유적, 경승지를 보며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멈춘 별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부암동은 드라마 영화 촬영 명소로 알려지면서 골목길 곳곳에 개성 넘치는 카페와 가게가 들어선 감각적인 공간이 되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기생충'에서 세 가족이 비를 맞으며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던 계단길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부암동은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와 함께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과거의 모습, 그리고 국가명승지를 포함하는 수려한 자연, 이 3박자가 공존하는, 도시의 낭만, 역사, 자연이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다.
출발은 이왕이면 길의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 부암동길은 상명대 입구 홍지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부암동 거리 걷기 : 탕춘대성 홍지문에서 출발해 석파랑을 지나 부암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걷는 길가에 감각적인 가게와 카페들이 이어진다. 서울미술관을 지나 자하문터널 앞에 터널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바로 이곳이 영화 '기생충' 촬영지이다. 부암동 주민센터 입구에서부터 옛 골목길 탐방이 시작된다. 가운데의 가장 좁은 골목길(창의문로 7길)로 들어가면 무계원 담장 뒤 골목 안쪽에 안평대군 집터가 있다. 그 앞에는 현진건 집터도 있다. 반계 윤웅렬 별장 앞을 지나 한양도성 옆길(창의문로 5길)을 따라 내려온다. 무계원을 지나 창의문로를 만나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가 윤동주 문학관으로 내려와 창의문을 지나 백석동길로 들어선다. 계곡 안에 갤러리와 예쁜 카페들이 줄이어 있는 길을 돌아 오르면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인 산모퉁이 카페가 나온다.
*백사실 계곡(백석동천) 구간 : 여기서 더 올라 백석동길을 따라 가면 예쁜 집들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을 지나 여시재 앞에 삼거리 막다른 곳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백석동천으로 내려서는 비밀 통로 같은 길이 있다. 모르면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지만 내려서면, 도시 안에 이런 곳이 있었으리라곤 상상 못 할 별천지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국가명승지 '백석동천'이다. 이곳을 흐르는 백사실 계곡은 1급수 지표종인 도룡뇽이 집단 서식하는 자연생태보호지역으로 아는 사람만 안다는 서울의 유일한 청정계곡이다. 계곡의 절경지와 현통사를 지나고 부암동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과 주택가를 지나 홍제천을 따라 세검정까지 걷는다.
부암동&백석동천길 정보
◇길의 유형/형태 : 골목길, 생태길/포장길 90%, 흙길 10%
◇거리 : 8.4km
◇소요 시간: 2시간 30분
◇시작/종료 지점 : 상명대 입구/세검정
◇경유지 : 홍지문-석파정 별당-석파정(서울미술관)-안평대군 이용 집터-현진건 집터-반계 윤웅렬 별장-무계원-찬란한 유산 촬영지-윤동주 시인의 언덕-윤동주 문학관-창의문-환기미술관-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 산모퉁이-백사실계곡-백석동천-세검정
◇걷기 포인트 :
- 부암동의 감각적인 카페, 갤러리, 가게
- 찬란한 유산, 커피프린스 1호점, 기생충 영화 촬영지
- 국가명승지 백석동천& 생태자연보호지역 백사실 공원
- 서울시 등록 음식점 1호인 오진암의 건물 자재들을 무계정사지로 옮겨와 전통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무계원
- 청운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윤동주 문학관
-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한국적인 건축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세검정 터
◇녹색길 비율 : 40%
◇난이도/경사도 : 하초급/20도 미만
◇샷 장소 : 중상~상/골목길 곳곳,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너머로 보이는 시내, 산모퉁이 마당에서 본 북악산 한양도성과 전망, 백석동천&백사실계곡 (백석동천의 연못과 바위 계곡, 단풍 질 때와 봄꽃 만발할 때 꼭 가서 인생 컷을 남겨 보자.)
◇걷기 좋은 때 : 가을, 봄(백석동천의 봄과 가을은 환상적임), 여름, 겨울
◇Tip :
- 어디든 부암동의 카페에서 차 한잔은 이곳이 주는 특별함과 골목길의 정취에 젖어들게 해 줄 것이다.
- 화장실: 창의문, 부암동주민센터, 서울미술관, 시인의 언덕 밑
◇등급 : ★★★★★
참고 지식
◇부암동 :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은 도성에서 가까운 절경지여서 별장지와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동네이다. 부암동은 자문밖 일대의 부암동·홍지동·신영동·평창동을 통틀어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인다. 부암동이란 명칭은 부침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약 2m 높이의 이 바위에 다른 돌을 자기 나이만큼 문지르고 난 후 손을 뗐을 때 돌이 떨어지지 않으면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1970년 자하문 길이 확장되면서 없어졌다.
◇자문밖 : '자하문밖'의 줄임말로 창의문을 자하문으로도 불렀다. '자하'란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자줏빛 금색 안개를 뜻한다. 옛날엔 자문밖 부암동 일대가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에 둘러싸여 풍광이 수려한 데다 자줏빛 안개가 자주 끼는 선경을 연출하곤 해 자하문이란 별명을 얻었다.
경유지 소개
◇탕춘대성 홍지문 :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1715년(숙종 41)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을 잇는 탕춘대성이 건립됐다. 홍지문은 홍제천에 설치돼 수문과 함께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사용돼왔다. 1921년 홍수로 붕괴됐으나 1977년에 이를 수습, 복원하였다.
◇석파정 별당과 석파랑: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에 딸린 사랑채이다. 건축재료와 만든 솜씨가 뛰어나 조선시대 상류사회의 대표적 사랑채이다. 흥선대원군이 사용한 큰방과 손님 접대용 건넌방, 대원군이 난초를 그릴 때 사용한 대청이 있다. 1958년 서예가 손재형이 이곳에 가옥을 지을 때 석파정 경내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다시 세웠다. 손재형은 일본인 교수가 1943년 일본에 가져간 추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되찾아온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만약 그가 세한도를 찾아오지 못했다면 우리는 영원히 세한도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석달 뒤 그 교수 집에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기 때문이다. 석파정 별당 밑에는 길가에 석파랑이라는 한정식집이 있다. 이 역시 손재형이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황제의 계비인 순정효황후 윤씨의 옥인동 생가를 옮겨온 것이다. 1989년 석파정 별당과 별채로 조성된 이곳을 현재의 김주원 석파랑 대표가 사들여 1993년 한식당으로 탈바꿈시켰다.
◇석파정: 세검정 자하문 밖으로 통칭되던 한양 도성의 경승지에, 소계류와 거암 장송을 배경으로 지은 이 정자는 국내 원유정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사랑채는 1958년 홍지동으로 이전되었으나, 본정 등 나머지는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몇 안 되는 정자이다. 집 뒤에 ‘三溪洞’(삼계동)이라고 새긴 큰 바위가 있어 ‘삼계동정사’로 불렸다. 흥선대원군의 아호 '석파'(石坡 바위 언덕)는 이곳에서 유래했다. 석파정은 대원군의 별장이지만, 원래는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1796~1870)의 별서였다. 장안의 으뜸가는 명원을 대원군이 탐내 팔 것을 종용했으나 김흥근이 거절했다. 이에 대원군이 "하루만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 별장이나 정자를 가진 사람은 빌려달라고 하면 부득불 허락하는 풍습이어서 흥근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대원군은 임금께 한번 행차하기를 권해 임금을 모시고 갔다. 흥근은 임금께서 임했던 곳을 신하의 의리로서 감히 쓸 수 없다 하여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즉 대원군이 빼앗은 것이다. 특이한 건물은 집 왼편 계곡 위에 걸쳐진 ‘유수성중관풍루’란 누정이다. 서양식 건축 기법이 더해진 공예물 같은 집이다. 지금은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통해서만 석파정에 들어갈 수 있다. 2006년 의약품 유통업체인 유니온약품 그룹의 안병광 회장이 경매에 나온 석파정을 응찰해 감정가의 83%인 63억 1천만 원에 낙찰하였다. 안병광은 석파정 입구에 사설 서울미술관을 개관하고 미술관이 석파정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안평대군 이용 집터 :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이용은 함경도 야인을 토벌했고, 조정의 실력자로 부상했지만 정치를 피해 무계정사에 소박하게 머물렀다. 시문·그림·가야금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혔다. 그는 1447년 봄 어느 날 꿈에 무릉도원을 본다. 화가 안견에게 꿈에서 본 것을 얘기하고 그리게 했는데, 아마도 안견은 안평에게 들은 것과 흡사한 이곳 '청계동천'으로 추정되는 곳을 배경으로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를 그렸던 것 같다. 실제로 안평대군은 이곳에 집을 짓고 글을 읊고 활을 쏘며 살았고, 집터 앞 바위에 ‘무계동’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러나 계유정난을 일으킨 바로 위 둘째 형 수양대군의 집요한 추격을 피하지 못하고 1453년 역모로 몰려 교동도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36세를 일기로 사사되고 말았다. 지금은 집 앞 언덕 위로 복개가 되고 집들이 들어차 있지만 봄철 벚꽃이 만발할 때 골목 사이로 올라가 보면 과거에 청계동천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지금도 조금은 상상이 될 것이다.
◇현진건 집터 : 무계정사 바로 앞엔 근대문학 초기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 현진건 집 터가 있다. 그는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1943년 44세의 이른 나이에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았던 이곳 자택은 종로구가 공용주차장을 짓는다며 헐어버려 빈터만 남게 됐다. 2012년 그 옆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 경매에 부쳐졌다는 소식이 있고, 지금은 개인 부지로 사용되고 있다.
◇반계 윤웅렬 별장 :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윤치호의 아버지로 조선 말기의 무신(대한제국 시기 군부대신) 윤웅렬이 자하문 밖 경승지의 땅을 매입하고 1906년 초에 벽돌조 양풍 양식으로 지은 별장. 셋째 아들인 윤치창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조성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무계원: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 한옥 공간으로 이 부근에 안평대군의 무계정사가 있었던 데서 이름을 빌려왔다. 종로구는 2010년 9월 초 호텔 신축을 위해 철거가 시작된 오진암을 부암동으로 옮겨 복원해 '무계원'으로 명칭했다. 오진암은 종로구 익선동에 위치해 있던 약 700평의 단층 한옥으로 1953년 요정으로 개업(서울시 등록 음식점 1호) 1970∼80년대 삼청각ㆍ대원각과 함께 요정 정치의 근거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찬란한 유산 촬영지 :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가는 길가(창의문로)의 골목길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 윤동주 문학관 : 윤동주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할 때 이 언덕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이곳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꾸며진 이유이다. 이때의 4개월이 윤동주의 짧은 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로 여겨진다. 윤동주가 보았을, 이 언덕에서 해 지는 서울 풍경과 그윽한 자하문 밖 쪽 풍경은 지금도 아름답다. 그 밑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청운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어 특별한 추억의 장소가 되고 있다.
◇창의문 : 북문인 숙정문을 열어두면 나쁜 기운이 들어온다고 해 아예 닫아두는 바람에 사소문 중 북소문인 창의문이 북문 대신 많이 사용됐다. 인조반정 때 능양군(인조)과 반군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하였고, 그 후 문루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건 유서깊은 문이다. 창의문은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
◇산모퉁이 카페 : 아시아 각국의 목각 인형으로 유명한 목인미술관의 김의광 관장이 운영하는 카페다. 원래는 김 관장의 집이었는데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성의 집으로 유명해진 이후 카페로 변신했다. 처음엔 드라마 때문에 온 사람들도 주변 풍경과 독특한 소품에 반해 찾게 된다고 한다. 산 한쪽 언덕에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층 카페로 분위기와 풍광이 뛰어나다.
◇백석동천& 백사실계곡 : 백악산(북악산의 옛 이름) 뒷자락의 백사골에 있는 동천(洞天: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흰 돌이 많은 백악산을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에 비견하여, 백석의 경치 좋은 곳이란 뜻.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지와 연못, 각자바위 등이 잘 남아 있는 1800년대 조성되었던 격조 높은 별서유적지이다. 2008년 명승 제36호로 지정되었다.
◇세검정 : 이곳은 온 산이 울릴 만큼 수량이 많고 맑고 너럭바위가 많은 풍광이 최고인 장소였다. 지금은 복개된 차도 안에 갇혀버린 홍제천, 다닥다닥 붙은 집들, 시멘트가 붙은 바위, 생활하수가 흐르는 뿌연 물로 옛 풍광은 없어졌다. 세검정도 1944년 불타 없어진 후 1977년 새로 세워졌는데 원래와는 다른 모습이다. 겸재 정선의 '세검정'도를 보면 당시의 세검정의 모습과 주변 풍광을 짐작할 수 있다. 계곡에 접한 높다란 바위 위에 기다란 사각 돌기둥 주춧돌 위에 잘 세운 누각이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계곡면을 제외한 3면엔 누각을 빙 둘러 담장이 쳐져 있다. 주변 풍경과 어울려 진경산수를 연출한다.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김유 등이 이곳에서 광해군 폐위를 결의하고 칼을 씻었다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 온다. <궁궐지>에 “계해년의 반정 때 창의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세검정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분명 한자가 검을 씻었다는 '故名洗劍亭'으로 돼 있다. 조선 초기에 원래 정자가 지어져 있었고, 인조반정 뒤에 세검정이라고 이름을 바꿔 부른 것 같다.
응용 코스
주변에 많은 길이 있고, 북악산과 인왕산 기슭으로 실핏줄처럼 많은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네이다. 부암동길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주 길만 아래와 같다.
1.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
2. 한양도성길 북악 구간
3. 인왕산 숲길
4. 인왕산 자락길(인왕스카이웨이 산책로)
5. 한양도성길 인왕 구간
6. 탕춘대성길
부암동& 백석동천길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