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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Nov 07. 2018

부진아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부진아라는 기준이 있었다. 학습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평균 이하의 학생, 군대로 치면 관심병사였다. 나는 그런 부진아였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많이 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 불과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평균 이하라는 명찰을 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는 간다. 엄청나게 산만하고 과잉행동이 많았으니까. 수업시간에는 칠판보다 창문을 많이 쳐다보았고, 쉬는 시간만 되면 온갖 사고를 만들어내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히스테리가 많은 아주머니였다.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고 학생에게 윽박지르는 경우가 잦았다. 그녀의 성격은 나 같은 부진아를 대할 때 빛을 발했다. 모든 대화에서 소리를 질렀고, 일상처럼 교실 뒤에 서 있었다. 가끔 더 화가 나면 30cm짜리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선생은 결국 엄마를 학교까지 불러냈다. 


엄마가 학교로 불려오신 날은 결과만 알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조퇴를 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학교에서 집으로 빨리 돌아간다는 사실에 신이 나 있었다. 물론 다음 날은 정상등교했다. 


나중에 커서 듣게 된 이야기에 따르면, 그날 담임은 엄마를 불러다 앉혀놓고 나를 가르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한참 동안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이렇게 산만한 아이는 처음 봤다는 둥. 무슨 말을 해도 잘 듣지 않는다는 둥. 엄마는 아마도 그 선생이 촌지를 원했던 거 같다고 했다. 그 속사포 같은 푸념을 들어주던 엄마는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려 학교를 옮기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 말을 들은 담임은 뭘 또 그렇게까지 하시냐며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고. 엄마는 담임과 담판이 끝나자마자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촌지를 에둘러 요구하는 선생과 단호박 학부모의 침착한 대처.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다. 나는 엄마가 멋있게 느껴짐과 동시에 미안했다. 비록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절이었지만 나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 날부터 엄마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회사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누군가 안 좋은 일을 한데 모아 나에게 몰아주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희망이 느껴지는 부분을 골라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앞으로 얼마나 연봉이 오를 수 있는지, 몇 년 안에 결혼할 수 있는지. 엄마는 놀라워하고 기뻐하셨다.


오늘 몇 번 실수를 저질렀는지, 회사에서 내 이미지가 좋지 않다던지, 사실은 이 일이 안 맞는다는 등의 내용은 생략했다. 내가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서라도 부진아가 아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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