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교는 끊임없이 내 삶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by 이키드로우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늘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업 초부터,

어쩌면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잘 나가는 회사들을 마주할 때면

부러움보다 먼저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이 자리 잡았다.


‘나는 저만큼 못하는 사람인가.’

‘내 선택들이 틀린 건 아닐까.’


비교가 힘든 이유는

그 순간마다

나의 생얼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포장되지 않은 실력,

정리되지 않은 기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나.


특히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그 느낌이 더 선명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이렇게까지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고 나서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냉혹한 현실로 와닿았다.

누구는 부모님의 재산과 지원으로

시작부터 멋지게 다 갖춰진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간판하나 달지 못하는 초라한 작은 사무실에

컴퓨터 달랑 하나 가져다 놓고 사업을 시작했으니까.

아무것도 없어 보였던 내가

유독 초라해 보이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 비교는

나를 작게 만들었고,

자신감을 갉아먹었다.

괜히 괜찮은 척을 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면

스스로를 더 냉정하게 몰아붙이게 되었고

초라한 현실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의 성과를 보며

의심에 빠지는 동시에,

나는 점점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크고

단단한 회사를 만드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일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내 삶의 목표일까?


그 질문은

회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곧 삶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잘 산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까?’


비교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진짜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의 회사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계속해서 묻게 했다.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그 과정은 분명

나에게 많은 부담과 상처를 남겼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비교는

나를 주저앉히기보다는

내 삶에 중요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주었다.


비교는

피해야 할 감정이라기보다,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였다.


문제는

비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비교 끝에서

어떤 질문을 붙잡느냐였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 덕분에

꽤나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고

지금도 조금씩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며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