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때로는 폭력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 사람을 재단했던 시간들

by 이키드로우

한때 나는

나와 결이 맞지 않다고 느껴지거나,

너무 몰상식해 보인다고 판단되는 사람 앞에서

입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판단들 중 상당수는

섣부른 것이었다.


몇 마디 말을 섞어보면

대충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나는 자부했다.

말의 태도, 반응, 사고방식 몇 가지를 보고

이 사람은 나와 통하지 않는다고

빠르게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사람을 잘 안다는 확신이 아니라,

사람을 단순화시키는 자만이었다.


사람은

그렇게 쉬운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 속에 있고,

각자의 가치관과 판단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그 깨달음에 이르기 전까지,

나는

내가 부정적으로 판단한 사람들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겉으로 보기엔

갈등을 피하는 태도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은

내 기준으로 그들을 재단한 뒤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다고

결정해 버린 상태였다.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었다.

존중도 아니었다.


그건

무시였고,

내 잣대로 내린 판결이었으며,

아무 말 없이 내려진

형의 집행에 가까웠다.


상대는

그 침묵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침묵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걸.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부끄럽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너무 쉽게 등을 돌렸고,

말하지 않음으로

상처를 주었다.


이제 와서

그들에게 찾아가

사과를 꺼내는 것도

어쩌면 또 다른 자기만족일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미안했다고.

그때의 침묵은

너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내가 덜 성숙해서 선택한

쉬운 방식이었다고.


이제 나는

침묵을

함부로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말하지 않는 편이 편할 때일수록,

그 침묵이

어떤 의미로 전달될지를

한 번 더 생각하려 한다.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늦게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기보다,

침묵을 조심히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사람을 대하는

나만의 성숙의 단계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