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른 사람이었다

속도에 대하여

by 이키드로우

나는 오히려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성격도 급한 쪽이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에서

확실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효율과 효과를 동시에 잡고 싶었고,

짧은 시간 안에 성과가 보이면

그만큼 확신도 빨리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전형적인 ‘빠른 사람’의 태도였다.


반대로

천천히 쌓아 올리는 일에는

재능이 없어 보일 만큼 미숙했다.

시간을 들여 축적하는 과정은

답답했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다.


그래서 초반의 나는

속도가 곧 능력이라고 믿었고,

빠른 결과가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뀐 건

나이가 들고 나서였다.

나를 찾는 질문 앞에

자주 서게 되었을 때였다.


삶은

단기적인 결과로 평가받는 무대가 아니라는 것,

타인의 반응으로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구조도 아니라는 것.


결국 중요한 건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의 문제라는 걸

그때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삶은

빠른 결과만으로는

지탱되지 않는다는 것도.


단기적인 성과는

순간의 확신을 줄 수는 있지만,

오래 버텨야 하는 삶 앞에서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반대로

장기적인 과정을

스스로 납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이 있을 때

삶은 훨씬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빠른 속도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어떤 국면에서는

속도가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빠른 결과보다

꾸준히 멈추지 않고

오래가는 쪽에 더 가까웠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느려졌지만,

대신 삶의 과정을 누리고 즐기며

차근차근 쌓아 올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속도를 줄인 게 아니라

기준을 바꾼 셈이다.


이제는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보다

어디까지

계속 갈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다운 삶에는

속도보다

끈기가 더 필요하다는 걸

조금 늦게 배웠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