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전하는 메시지
말만이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는다.
너도 살아보면서 한번 즈음은
그리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나에게 침묵은
분명한 선택이다.
첫 번째 침묵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다무는 일이다.
모든 말에 반응할 필요는 없고,
모든 오해를 풀 필요도 없다.
어떤 말들은
설명할수록 더 소모적이고,
대응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럴 때 나는
상대에게 이길 말을 고르기보다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두 번째 침묵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의 침묵이다.
누군가 큰 아픔을 겪고 있을 때,
특히 그 마음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할 때,
나는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도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 뿐,
듣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위로의 말을 찾기보다
그 곁에 머무르는 쪽을 택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
도움이 되지 않을 말을
굳이 덧붙이지 않는 것.
그 침묵은
모른다는 인정이고,
함부로 덜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세 번째 침묵은
듣기 위한 침묵이다.
사람들은 종종
다시 말하기 위해 듣는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려고,
자기 의견을 덧붙이기 위해
상대의 말을 기다린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침묵은 다르다.
말을 들을 때는
그냥 침묵한다.
반박하지 않고,
정리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기 위해 듣는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침묵은
상대를 비워두는 시간이 아니라
상대를 채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침묵을
구분하려 애쓴다.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침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선택은
완전히 다르다.
침묵은
늘 미덕도 아니고,
늘 회피도 아니다.
어떤 침묵은
선을 긋는 방식이고,
어떤 침묵은
곁에 남아 있는 방식이며,
어떤 침묵은
사람을 더 깊이 아는 방식이다.
나는 말을 아끼기보다
침묵을 선택할 때
조금 더 신중해지려고 한다.
그 침묵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기 위해서다.
침묵을 사용할 때에도
나는 늘 네가
지혜롭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