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때 후회할까?

by 이키드로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말을

너도 들어봤을 테지.

어떤 선택 앞에서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는

‘기준’이라는 게 필요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반드시 꺼내보는 기준이 있다.


‘내가 이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죽을 때 후회할 것인가.’


조금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 앞에서는

삶의 우선순위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정리된다.


사람의 선택을 흐리게 만드는 것들은

대개 비슷하다.

눈치, 체면, 손해, 불안,

지금 당장의 편안함.


그런 것들의 경우

현재의 나 스스로에게는

설득력이 있지만,

죽음 앞에서는

힘을 거의 쓰지 못한다.


이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대부분의 핑계는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지금 손해인지,

누가 뭐라고 볼지,

조금 불편해질지 같은 것들은

더 이상 판단의 중심에 서지 못한다.


기준이 없을 때

사람은 스스로를 향해

설명이 많아진다.

왜 그랬는지,

왜 못 했는지,

왜 지금은 아닌지.


나는 기준이 흐려질수록

변명이 많아졌고,

선택을 미뤘고,

결정을 주도적으로 하지 않고

흘러가는 상황에 맡겼다.


이 질문을 기준으로 삼고 나서

선택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이 선택이

내 삶을 조금이라도

나답게 만드는가,

아니면 또 한 번

외면하게 만드는가.


이 기준은

나를 영웅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불리한 선택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관계를 잃을 수도 있고,

편한 길을 포기해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 기준을 버렸을 때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그때마다 남았던 건

안도감이 아니라

극심한 후회였다.


나의 경우 기준은

나를 성공으로 데려가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이유도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삶을 무겁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사람이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 남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무엇 앞에서 물러서지 않을지를

분명하게 해 준다.


기준이 생기고 나서

모든 선택이 옳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틀리고,

후회할 만한 결정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왜 그 선택을 했는지는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기준은

나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결정을 대신해 주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도

중요한 선택 앞에 서면

이 질문을 다시 꺼낸다.


‘이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나는 마지막에

이 선택을 후회할까.’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면,

손해가 따르더라도

그 선택 쪽으로 움직인다.


내 삶을 지탱해 온 것은

대단한 결심들이 아니라,

이 질문 앞에서

여러 번의 선택을

외면하지 않았던 순간들이었다.


가능하다면

너도 그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