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한 선택
우리는 살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용서라는 단어 앞에 서게 된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감정,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순간들.
그때 우리는
용서해야 할지,
붙잡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할지를
혼자서 오래 고민하게 된다.
용서를 말할 때
사람들은 종종
상대를 이해하라는 쪽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그럴 수도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용서가 반드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용서는
상대를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다.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 일이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넘어가는 태도는
용서와는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그 일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놓는 선택에 가깝다.
분노와 억울함,
계속해서 되새기게 되는 장면들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일.
용서하지 못한 상태는
상대를 묶어두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마음은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결정에 가깝다.
더 이상
그 일에
내 감정과 에너지를
계속 내어주지 않겠다는 선택.
그렇다고
모든 용서가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용서와 화해는
같은 말이 아니다.
용서했지만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용서했지만
다시 가까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선택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서는
다시 믿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다시 맡기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결정이다.
그래서 용서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느 날 다시 올라오는 감정이 있다.
그때마다
다시 놓는 연습을 한다.
나는 이제
용서를
고결한 태도로 포장하지 않는다.
용서는
나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붙잡고 있던 것을
완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계속 붙잡고 있기엔
내 삶이 아깝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놓는 것.
용서는
잊는 능력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능력에 가깝다.
혹시 네가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서 있다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감정을 쥔 채로 사는 시간이
너의 삶을 얼마나 붙잡고 있는지는
한 번쯤
조용히 돌아봐도 좋겠다.
용서는
상대를 풀어주는 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그 정도의 용서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