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을 전제로 관계 맺는 태도
포용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과 무조건
가까워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고,
그 거리 안에서 관계를 맺는 일은
오히려 더 성숙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말하는 포용은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해서 가능한 태도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동의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역시
성장과 성숙의 한가운데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나 역시
완전하지 않고,
늘 부족하고,
여전히 배워가는 사람인 것처럼
그들 또한
각자의 속도로
그 과정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
그 인식 위에서
관계는 조금 달라진다.
포용은
모든 행동을 받아주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선을 넘는 행동에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고,
거리 조절 역시
관계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선택이다.
다만
그 경계 안에서
사람 자체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쉽게 재단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게 내가 말하는 포용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늘 판단이 앞선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나와 맞는지 아닌지.
하지만
사람은
판단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되거나 이해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존재에 가깝다.
모두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포용은
그 불완전함을 없애려 애쓰지 않고,
그 불완전함을 전제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태도다.
그래서 포용은
관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남을 수 있게 만든다.
사람을 고치려 들지 않고,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태도.
그 위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소모되지 않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포용은
사람을 끌어안는 기술이라기보다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성숙해지려는
노력이자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렵지만,
가장 필요한 태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