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잃어버린 스몰토크
나는 말을 애써 줄이려 한 적은 없다.
대신 말의 내용을 신중히 선택하려 애써왔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자,
지나치게 감정적인 말은 삼키자,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말은 한 번 더 생각하자.
그건 나에게 꽤 오래된 훈련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말을 함부로 던지지 않게 되었고,
생각 없이 뱉는 말로
상황을 망치는 일도 줄어들었다.
지금의 내가 있는 데에는
그 훈련의 공이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훈련이 어느 순간부터
일상의 다른 영역까지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말을 조심하라는 기준이
어느새
일상의 대화까지 닿아버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
가볍게 흘려도 될 이야기들,
목적 없는 대화들까지
하나둘씩 줄여버리게 된 것이다.
나는
잡담에 약해졌고,
스몰토크에 서툴러졌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
‘이 말이 꼭 필요한가’를 먼저 따지다 보니,
대화의 흐름을 가볍게 이어가는 감각이
조금씩 둔해졌다.
은연중에
스몰토크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일상의 대화는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대부분의 잡담에는
결론도, 목적도 없다.
그저
사이의 온도를 맞추고,
관계를 풀어두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 영역을
효율이 낮은 대화로 분류해 버렸다.
말의 밀도만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밀도가 낮은말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그러다 보니
말은 정확해졌지만
대화는 다소 딱딱해지거나
어색해졌다.
의견은 분명히 전달되었지만
관계가 끈끈해지는 느낌은
덜해졌다.
그제야
이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말을 아끼는 건
과연 현명한 일이었을까.
돌아보면
말을 선택하려 했던 태도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모든 말에 같은 기준을 적용했던 것이
문제였다.
생각이 필요한 말과,
온기가 필요한 말은
같은 기준으로 다뤄지면 안 된다.
정제해야 할 말이 있는가 하면,
흘려보내야 할 말도 있다.
요즘의 나는
그 차이를 다시 연습하고 있다.
과하지 않게,
의미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게,
굳이 멋진 말이 아니어도
대화를 이어가는 법을.
말을 많이 하겠다는 게 아니라,
말의 역할을 다시
구분하는 연습에 가깝다.
정리해야 할 말은 정리하고,
풀어두어야 할 말은 풀어두는 것.
현명함은
말을 줄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말의 쓰임을 잘 구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닫고는
그 쓰임을 잘 구분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