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반복되는 나를 포용하는 행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안전지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리적 공간이지만
진짜 나만 쏙 들어가서
숨을 수 있는 공간.
완전하게 안전하며
완전하게 무장해제가 가능한 공간.
어떤 생각으로부터도
어떤 상황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그런 공간을 꿈꿔본다.
마치
달팽이들이 등에 지고 다니는
껍질 집처럼.
하지만 불가능하지.
우린 달팽이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사람의 틀 속에 갇힌
사람이니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너무 몰두하는 것은
확실히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아 보인다.
생각의 방향이
내 감정으로 치우치며 깊게 파고드는 순간,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느낌의 방향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의 방향으로 흐른다.
왜 그런 걸까?
신기하기도 하지…
달팽이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못난 내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
나 스스로로부터 마저도
숨어버리고 싶어서인
이유가 아닐까.
이런 과정도
나를 점점 더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아주 조금이지만
약간씩의 평화가 찾아든다.
아 내 속에 이런 모습도 있구나,
내가 이런 생각에 이렇게 잠길 수도 있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끼는구나,
생각보다 나는 예민하구나,
생각보다 나는 악랄하구나,
생각보다 나는 더 약하구나 같은
내가 몰랐던 나 혹은
내가 부인하고 싶었던 진짜 나를
매일같이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너무 좋으면서도
가끔씩은 나를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려버리는 것 같아
스스로 민망해지거나
때로는 자신에게 실망스러움을 많이
느끼게 한다.
하지만
종국에는 어떤 결론이 날지
나는 어렴풋하지만 알고 있다.
결국 나는 나를 끌어안을 것이다.
내 못난 모습
나의 수치와 굴욕들,
나의 죄책과 온갖 상처들을,
여태껏 숨기지 않고
힘들게 마주해 왔던
그 시간과 에너지 이상으로
나는 나를 더 힘껏
끌어안아 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이런 방식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리라는 것도 안다.
발견된 나의 못난 모습들을
끌어안고 나서
잠시 평화롭다가는
또다시 나는 나의
새로운 못난 모습들과 마주하겠지.
그러면 또 그 모습을 마주하는 동안
힘들어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그 못난 모습을 또다시 포용하겠지.
지금 내가 조금
울상을 짓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나를 알아가는 이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불과 며칠 전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인다,
나는 내 속의 괴물들을 사랑한다라고 되뇌며
그런 내용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진짜 그리 될 줄 알았다.
내 속의 못난 모습들과 쉽사리 친구가 되어
좀 더 성숙하고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물론 약간은 성숙했지만
내가 근래 들어 알게 된 것은
내 안의 못난 부분들과
화해하고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지난한 반복 행위
(내 못남을 발견하고,
힘들고 아파하고, 그것을 포용하는)
의 무수한 도돌이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힘든 게 덜 힘들어지거나
내가 나를 갑작스레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각오하게 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예측하게 되고
굳은살이 베듯
이 반복도 반복할수록
아주 조금씩은 수월해 지리라는
희망을 가져볼 수는 있다.
오늘은
달팽이 껍질 속으로
숨고 싶은 날이지만,
지금 당장은 숨더라도
영원히 그 껍질 속에
숨어 있지 않을 것을 알기에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