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하덕규 님의
‘풍경’이란 노래는
아주 단순한 가사로 이뤄진 노래지만
단순해 보이는 그 사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노래를 들으며 생각해 본다.
나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어떤 자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으로 존재할까?
지금의 나는 제자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까?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올 수는 있겠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들을
탄탄하게 잘 해내는 것이
나의 제자리일까?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로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역할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까?
관점을 조금 바꿔본다.
내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초점을 뒀던 것에서
지금 내가 어떤 태도로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으냐의 관점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내가 나답게,
애초에 내게 심겨진 내 재능과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처럼
타인들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보면
‘나는 어떤 역할 잘할 때
나의 제자리에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무엇을 꼭 할 필요도
무엇이 꼭 될 필요도 없다.
지금을 어떤 태도로
무엇을 지향하며 사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또 돌아오는 풍경은
각자 제 할 일을 잘하는 풍경이 아니라
각자가 가장 자기스러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제자리’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스스로 조금 쉬는 시간이 필요해
속도를 내지 않고 있는 요즘에
역할이나 성취를 중심에 둔
‘잘 해낸다’를 ‘제자리’로 생각하면
그 개념들은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 나를
정죄하고 채찍질할 것이다.
하지만
나 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태도로
‘제자리’를 정의하면
달리든 걷든 쉬든
모든 행위가 나다움을 위한
연장선에 있게 되므로
나 스스로에 좀 더
관대해지고 융통성이 있게 된다.
대신
나다움에 대해 더 생각하고
내 내면의 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그래야
내 제자리가 어디인지
스스로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 테니까.
하루속히
나만의 제자리로 돌아가고
또 돌아오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