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관심이 분명 있는데 없음

오지랖 0%

by 이키드로우

오지랖

명사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참견하려 드는 태도나 성향


보통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며,

“괜한 친절”, “선 넘는 관심”,

“지나친 간섭”을 뜻할 때 사용됩니다.




그렇단다.

오지랖은 그런 뜻이다.


나는 오지랖 ZERO %에 가깝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다.

정확히는 타인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타인들과 함께 해야 하는

각종 행사, 의례들 같은 것들에

관심이 없는 게 더 맞으려나.

또는

말 그대로 ‘필요’ 이상의 간섭이나

참견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내가 하는 일들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하는데,

또 일을 할 때는 진짜 그 사람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인데 말이다.


일의 관계로 만나

특정 부분에서 나를 입증하고

내 것을 내어주는 것에 있어서는

아주 적극적이고 열심인데 반해

사적인 관계가 되는 순간

타인에 대한 관심이 0%에 육박한다.


뭘까?

도대체 왜일까?


오지랖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지만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사적 영역의 삶에서 오지랖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런 오지랖이 ‘인간미’라고 불리기도 하니까.


아무리 그 오지랖을 발동시켜 보려 해도

불씨 자체가 내겐 없는 건지,

오지랖에 불 자체가 붙질 않는다.


사전 전 뜻에는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에 간섭/참견하려 드는’

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문제는 그 오지랖이 너무 얕아

뭔가 필요해 보이는 일에도

간섭하려 들지 않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생일을 챙긴다거나 특정 기념일을 챙긴다거나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챙긴 하거나

기타 등등의 축하하거나 의미를 기리는 일들 자체가

솔직히 나에게는 좀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고 의미를 먼저 따지고 들어 버리니,

별 의미가 없다 생각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게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


공적인 영역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의 영역에 있어서도

로봇이 아닌 ‘사람‘이 일 하는 영역이다 보니

각종 행사들이 난무한다.


솔직히

사람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부대껴 만들어 내는

행사들의 ‘의미’를

아직도 나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의례’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 의례들은 나를 지치게 한다.

축하파티 같은 건 분위기도 방방 뜨고

즐겁고 유쾌해야 하는데,

그런 곳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봐도

내 경우 그런 분위기에

쉽게 녹아들 수가 없다.


내가 문제가 있는 걸까?라고

꽤 오랜 시간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고

다만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나를 탐색하고 나를 살피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잘 쓰고 있다는

증거라는 믿음이

내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잘 살펴야

남도 그나마 잘 살필 수 있다는 믿음.


타인을 돌보고 살피는 게 곧

나를 살피는 거라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


큰 행사가 아니라

작은 토크 모임도

나는 좀 힘들어하는 편이다.

차라리 어떤 특정한 주제가 있어

그것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유쾌하고 명랑한 기분으로

주절주절 긴 시간 떠들 수 있으련만,

그냥 이것저것

일상의 잡담을 하는 자리는

좀처럼 견디기가 힘들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일을 할 때는

진짜 그 사람을 위해

진심을 다해 일하면서

그들의 사적인 일상에는 관심이 없다라…

일이 아닌 사적인 관계로 만나는 것에는

애초에 큰 관심이 없는 상태라는 것과,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필요 이상의 간섭이나 참견,

즉 오지랖이 아예 발동하지 않는 건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을 가지고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몰고 가긴 싫다.

언젠가

조금씩,

나아져야만 한다면

나아져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