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치유하는 ‘치유자’
나를 포함해서,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괜찮은 척하며
밝게 웃고 있지만
사실은 그 마음에
진정한 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심리적으로 안정치 못한,
다소 긍정적인 느낌이 아닌 글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런 내 글을 읽고 응원을 해 주셨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쏟아낸 이 글들이
누군가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는 뜻인데,
이 글에 공감이 되었다는 것은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거나
이미 지난 경험이 있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 아닐까.
불안이 기본적인
디폴트 값이 되어버린 시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며
나도 모르게 우리네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린다.
또 쉬이 마음을 다친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며
우울과 좌절, 슬픔과 무기력 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어느 순간 나는
삶의 비전을 잃어버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해
젊은 시절 때처럼 자신감에 찬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더 이상 당차게 말하지 못한다.
나다움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탐색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씩 찾아가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세상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런 와중에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치유하는
치유자가
지금의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
앞으로 더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들이 계속 일어날 텐데,
누군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어떤 도구를 가지고 치유할지는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쉽게 도출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사람들을 치유하면 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강의나 강연을 하는 일.
내가 뭔가 완벽해서
이런 발상을 한 것은 아니다.
글을 계속 연재하다 보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니,
되려 내가 완벽하지 않고
나 역시 상처가 많고
치유가 필요한 존재이기에
내가 앞장서서
나를 비롯,
사람들의 치유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아픔은
늘 생각보다 너무 아프다.
때로는 참기 버거울 정도로 아프다.
그 아픔을 완화시키거나
조금은 더 빠르게 치료해 줄
치유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아픔을 피하게 하는 게 아니라
아픔을 마주하고도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상처를 가진 채
그 상처를 끌어안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수치와 굴욕으로 뒤범벅된
못난 자신을 마주하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를 포용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치유자가 되어보기로 결심한다.
쉽지 않겠지만
해보기로 작정한다.
내 모든 글, 그림, 말들이
세상을 치유하는
선한 도구들로 사용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