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삶의 시작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

by 이키드로우

오늘의 내가

너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나를 사랑해야 할 이유보다

나를 싫어해야 할 이유가

몇 배는 더 많은 것 같다.


비교적 어리고 젊을 때는

외모와 집안의 환경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나 스스로를 싫어하게 만들었고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서는

내 내면에 존재하는

어두움과 괴물들로 인해

나를 더 싫어하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쉽게 관리되지 않는

이 몸뚱아리에 대해서도

간간히 짜증이 올라오긴 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나날이 멀어지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나를 사랑하기 힘든 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내가 미워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억지로 나를 사랑하라,

나 자신을 받아들이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게 되면서

내 안의 독한 독만

더 쌓여감을 보았다.


시작 지점은 바로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미워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상적인 나를 버리는 건

쉽지 않다.


매체든, 책이든, 종교든

어떤 것에서든 영향을 받아

우리는 각자의 이상향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나는 이래야 해,

나는 저래야 해 같은

이상향.


내가 나를 미워할 수 있음을

인정한 그다음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이상향을 버리는 것이다.


이상향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 보고

탐구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정직하려면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되짚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다시 하나하나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다음 단계는

정직한 상태로 만나게 된 나를

받아들이는 단계다.


정직하게 나를 마주하여 발견한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천사든 악마든지 간에

일단은

‘이것이 바로 나구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한다.


혹자는 이것을

‘자신과 화해한다’라고 표현한다.


어떤 표현을 쓰든 간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련의 단계들을 지나게 되면

내 삶은

조금 새로워진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느낌이다.

내 이상향에 가까워져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임에서 오는

자유함이 있다.


이 받아들임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내 안의 모든 것,

부정적인 모습까지도

빠짐없이 인정하고 나면

스스로에 대해 실망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바람직한 욕구들이 샘솟게 된다.


진짜 자아실현의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삶의 품격이

실제로 높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싫어질 수 있다는 인정,

이상향 따위는 없다는 사실,

내 안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제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한다.